장자크 그로하 유럽상공회의소 소장은 북한과 한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코리아(Korea)'로 부른다. 때문에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중간 중간 "북(North Korea)이냐 남(South Korea)이냐"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가 철책만큼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그로하 소장은 10년을 평양에서,12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덴마크 주재 프랑스 무역대표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중국 연수 시절 북한 지하자원 수출 업무를 하던 홍콩 북아시아컨설팅 사장으로 발탁돼 1984년부터 93년까지 10년간 평양에서 살았다. 그는 "북한 사람들이 외국인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서투르지만 일단 말을 트고 나면 지극히 친절하고 순수하다"고 전한다. 그는 이후 지금까지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상근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유럽 기업인들이 방북할 때마다 수시로 동행하고 있다. 그로하 소장은 "나는 한국에 대해 강한 애착(strong feeling)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 "한국과 북한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미국이 의도했든 아니든 북한을 고립시킨 게 사실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중국 국경 국가들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하는 아시아·태평양 정책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빌 클린턴 전임자 시절 비어있다시피했던 몽골대사관이 증축됐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됐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대뜸 '사람들이 당신을 친북인사로 분류하면 뭐라고 말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나는 친(親) 무엇도 반(反) 무엇도 아니며 단지 어떤 정책(미국의 대외정책)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