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6차선의 대로에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 인력거 등 온갖 종류의 탈것들이 뒤섞여 달린다.


자전거를 탄 운동복 차림의 등교길 학생들,웨이우얼(維吾爾) 특유의 모자인 '도빠'를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남자들,스카프를 복면하듯 두른 채 치마를 입고도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경적을 '빵,빵' 울리며 달리는 차들,그속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활보하는 사람들….신장(新疆)과 시짱(西藏·티베트)을 연결하는 219번 국도의 시발지인 예청(葉城) 중심가 원화둥루(文化東路)의 아침 풍경이다.


저러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들은 여유만만이다.




[ 사진 : 실크로드의 중심도시 카슈가르의 명물 ‘둥(東)바자르’에서 형형색색의 과자와 사탕들을 팔고 있는 상인들.똥바자르에는 신장 뿐만 아니라 인도,파키스탄,중국 내지의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도 상품이 들어와 ‘동서교역의 현장’이 되고 있다. ]


중심가를 벗어나 실크로드의 고도(古都) 카슈가르로 향하는 315번 국도에 오르자 방풍 및 방사(防沙)를 위해 몇 겹으로 심은 백양나무가 길 양편에 시원스레 뻗어있다.


길 위로는 신장 특유의 당나귀 수레들이 승용차와 화물차,오토바이와 자전거 등을 피해가며 잘도 달린다.


좌충우돌의 위험이 커 보이는 데도 배추 양파 마늘 등의 채소와 나뭇가지 등을 잔뜩 싣고 달리는 사람은 태연하기만 하다.


수레에 짐을 높다랗게 싣고 그 짐 위에 올라앉아 기다란 막대기 하나로 당나귀를 이리저리 몰아가는 모습에서 잡사(雜事)에 초연한 그 무엇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경운기 짐칸에 나뭇가지를 잔뜩 싣고 그 위에 12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가면서도 이방인들을 향해 미소 짓고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타클라마칸 사막의 최서부를 달리는 길 왼편 멀리로 하얀 눈을 인 카라코룸 산맥의 지맥이 아스라이 보이면서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황량한 사막과 눈을 함께 볼 수 있다니….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나 마을 인근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과 한껏 부풀어오른 목화송이가 백설처럼 덮여있는 목화밭,수확한 목화를 당나귀 수레에 가득 싣고 가는 농부들,평평한 흙지붕 위에서 말려지고 있는 노란 옥수수 알맹이들,그리고 파스텔그림을 보는 듯 노랗게 물들어가는 백양나무 가로수길….


이런 환상적인 풍경이 예청에서 90km나 이어지더니 본격적인 사막이 시작된다.


모래만 있는 사막이 아니라 흙과 모래 자갈 잡풀이 군데군데 뒤섞인 사막이다.


도로포장이 낡아서 차는 수시로 덜컹대지만 '광활한 사막에 이런 길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 싶다.


길에서 몇 km쯤 떨어진 곳에 조성된 방풍·방사림의 녹색이 누런 사막 속에 선명하다.


예청에서 카슈가르까지는 280km.군데군데 오아시스 마을과 도시들이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여행의 쉼터가 된다.


예청을 떠난 지 140km쯤 되는 곳에서 첫 오아시스 마을을 지날 즈음 흐리던 하늘이 드디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수제품 칼로 유명한 잉지사(英吉沙)에서 신장의 별미인 라툐우즈로 점심을 먹는 동안 아찔한 소식이 들려온다.


엊그제 지나온 제산다반(界山大坂)에서 훙류탄(紅柳灘)까지 폭설로 인해 통행이 두절됐다는 소식이다.


동행한 리위안 중국국제체육여유공사 총경리는 "이틀만 늦었어도 티베트에 갇혀 신장으로 넘어가지 못할 뻔 했다"며 "판첸라마한테 기도한 덕분"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드디어 카슈가르다.


고대부터 형성된 실크로드의 동서교역 중심지이자 상업도시인 카슈가르는 우리와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신라의 혜초 스님은 인도로 구법여행을 다녀오면서 남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서 "다시 총령에서 걸어서 한 달을 가면 소륵(疎勒)에 이른다.


외국에서는 가사기리국(伽師祇離國)이라고 부른다.


이곳 역시 중국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다.


절이 있고 승려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진다.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먹으며 토착인들은 모직옷을 입는다"고 기록했다.


총령은 파미르 고원이고 소륵은 한나라 말기부터 당나라 말기까지 중국인들이 카슈가르를 부르던 이름.'한서(漢書)'의 '서역전'에도 소륵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혜초 스님은 친절하게도 현지 이름인 카슈가르까지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지금 카슈가르를 카스(喀什)라고 부른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카슈가르의 명물 '둥(東)바자르'로 간다.


둥바자르는 카슈가르와 역사를 함께 해온 신장 최대의 시장.이전에는 노점 위주의 시장으로 일요일에는 5만~6만명이 몰려드는 '일요시장'이었으나 4년 전 정부가 상가를 짓고 대부분의 상인들을 입주토록 해 지금은 예전 같은 시골장터의 풍경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다.


세로 길이가 200m,가로 길이가 300m에 이르고 내부를 7개 열로 구분해 상품의 종류별로 상가를 구획해 놓았다.


웨이우얼족만 가게를 열 수 있다고 하니 중국 정부가 신장지역에 쏟는 관심과 신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이 시장에는 그야 말로 없는 게 없다.


입구엔 과자와 사탕을 파는 가게들이 대거 진을 치고 있고,먹음직스럽게 입을 쩍쩍 벌린 석류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곳에서 15년째 석류장사를 하고 있는 압둘 케융씨(43)는 "석류가 혈액순환에 좋다"며 즉석에서 짠 석류즙을 내민다.


15종류 이상의 각종 멜론과 웨이우얼족 특유의 털모자,잉지사에서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수제품 칼과 민속 악기,늑대·여우 등 야생동물의 털가죽으로 만든 모피의류,웨이우얼의 명품인 카펫,각종 면제품….신장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도 물건이 들어온다니 실크로드의 교역도시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혜초 스님이 '절이 있고,승려도 있으며'라고 했던 카슈가르는 지금 이슬람 도시다.


신장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고 카슈가르는 그 중심이다.


1442년에 건립된 카슈가르 시내의 이드가 모스크에는 매일 5000명 이상이 모여 기도를 드리고,금요일에는 1만명 이상이 운집하며 라마잔축제 때에는 30만명 이상이 사원과 그 앞의 광장 도로 등에 운집한다고 하니 가히 이슬람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한때 창성했던 불교국가도 무상(無常)의 진리를 비켜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카슈가르=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