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 아주대 교수·재정학 > 올해 예산은 다른 해에 비해 의미가 크다. 예산편성단계부터 적자재정을 전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예산정책은 균형재정을 암묵적인 규칙으로 세입내 세출이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정부지출을 확대하려는 정책기술로 추경예산을 활용했지만,겉으로는 세입내 세출이라는 규칙을 유지한 것이다. 적자재정을 바탕으로 편성된 올해 예산도 매년 하는 정책꼼수인 추경예산을 활용하면 적자재정의 폭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정부란 본래 지출을 많이 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적용되는 특성이 아니고 모든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현상이며,재정학에서는 여러 가지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책에 나오는 덩치 큰 괴물의 이름인 리바이던 가설로 설명하고,정부예산규모가 곧 해당부서의 권력이므로 관료들은 예산을 극대화하려는 유인책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공공선택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편적인 현상이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와 어우러져 정부지출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동안 국가채무가 GDP 대비 7.2% 증가한 반면,참여정부 임기 절반 동안엔 11% 증가했다. 재정확대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세입내 세출이라는 원칙 속에서 추계예산을 활용했지만,이제는 처음부터 재정적자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물론 재정적자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조세정책이 본질적으로 비탄력적인 정책수단이므로,지출정책을 통해 정부가 꼭 필요로 하는 부문은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출은 반드시 일시적이어야 하며 구조적이고 지속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확정된 올해 예산에서 복지지출은 당초 정부안보다 1조3000억원 더 높아져,증가율이 13.4%나 됐다. 명목적으로는 국민들의 복지향상과 저소득층을 위한 배려이므로,연말의 자선냄비 논리로만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부인가. 그러나 복지예산이란 본질적으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지출이기 때문에 경제적 논리로도 접근해야 한다. 소득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소득보조 확대정책이 얼마나 많은 낭비로 귀결될지,노동공급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에 대한 비유인책으로 작용할지,민간시장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책분석과 정책기반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므로,재정정책에 더 많은 왜곡이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목표는 해당지역에 당선하는 것이므로,선거공약을 남발할 것이고 이는 곧 정부지출의 확대를 의미한다. 정부지출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관료의 권한은 커지므로 관료들은 지출확대 정책방향을 선호한다. 지역민은 투표권을 통해 지역발전에 우선하는 정치인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관료,지역의 이해집단 간에는 목표가 서로 일치하므로,쉽게 합의점을 찾게 되고 결국 정부지출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정학에서는 이러한 삼자간 이해관계의 단합 앞에는 누구도 당할 수가 없다고 해서 철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관료의 특성,지방선거의 세 가지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재정적자의 폭은 더 높아질 것이다. 물론 재정적자를 부담하게 될 국민의 적극적인 견제만 있으면,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국민들은 자주,균형,형평,복지라는 분홍빛 논리에 너무 쉽게 날카로운 견제의 힘이 무뎌진다. 그래서 일부 재정학자들은 법률을 통해 재정지출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정책도 국가의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수단들 중의 하나이다. 장기적인 비전없이 정치계절에 따라 흔들리면,그만큼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먼 얘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