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국제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제도권 정치조직으로 변신 중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칼끝 대치 상태에 돌입했다고 이집트 언론이 8일 보도했다. 이슬람 초기의 순수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와하비즘에 뿌리를 둔 두 조직은 그동안 서로의 투쟁방식을 비판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슬림형제단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하산 알-반나가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한 이슬람 부흥운동 단체로, 한때는 오늘날의 알-카에다를 능가하는 테러조직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가 1970년대들어 폭력투쟁 노선을 접으면서 조금씩 정치활동을 인정받아 급기야 지난해 실시된 이집트 총선에서 불법단체라는 약점을 딛고 20%의 의석을 확보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반면에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는 옛 소련의 점령 하에 있던 아프가니스탄 내의 이슬람 전사 양성소(마크타브 알-키드마)가 모태가 돼 1989년 이슬람 근본주의 실현을 위한 국제테러 조직으로서 모습을 갖췄다. 알-카에다는 1991년 걸프전쟁을 계기로 반미투쟁에 집중해 2001년 9월11일 미국 본토에 대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등 미국과 그 동맹들을 겨냥한 테러공격의 가장 중요한 배후로 자리잡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오늘날의 알-카에다 연관조직으로 분류되는 알-지하드 등 수많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가 생기는 토대가 됐다. 이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이 알-카에다의 이념 형성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두 조직은 지난 6일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무슬림형제단을 비방한 발언을 계기로 불꽃튀는 설전을 시작했다. 자와히리는 젊은 시절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해 활동하다 옥살이를 한 경력이 있는 이집트인 의사 출신으로, 알-카에다를 공동설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자와히리는 알-자지라가 지난달 촬영된 것이라며 공개한 2분짜리 비디오 테이프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총선에 참여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세속적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내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던 자와히리는 무슬림형제단이 지난해 이집트 총선에서 20%의 의석을 확보한 것에 대해 미국과의 정치적 거래를 위해 이슬람을 배반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무슬림형제단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 단체의 이삼 알-아리안 대변인은 현지 언론과의 회견에서 "온건한 이슬람운동을 거부하는 세력은 미국인과 급진적 세속주의자, 그리고 자와히리 같은 사람"이라며 "이는 이상한 동맹이 아닐 수 없다"고 자와히리를 몰아붙였다. 그는 또 "무슬림형제단의 운동이 폭력을 배척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룬 성과가 쓸모없다는 식의 주장은 알-카에다의 이익에 부합할 뿐, 이슬람이나 국가(이집트) 이익에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알-카에다가 폭력에 의지해 얻은 결과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면서 테러공격에 의존하는 알-카에다에게 투쟁전략을 수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집트의 한 분석가는 "알-카에다와 무슬림형제단이 공개적으로 설전을 주고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봐야 한다"며 이슬람 운동의 투쟁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