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영화의 주인공들은 상황판단이 빠르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제스처도 놓치지 않고 즉각 반응하는 '준비된 선수'들이다.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이나 성격차로 인한 갈등,3자의 개입으로 인한 오해 등에 봉착할 때,남녀관계는 비로소 변화를 겪게 된다.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는 이런 연애영화들과는 거리가 있는 멜로물이다. 주인공 우재(설경구)는 애정을 표현하는 타이밍을 늘 놓치고,연수(송윤아)도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하는데 서투르다. 그들은 무려 10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여기에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상의 모래성'을 수없이 지었다가 허물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대학동창인 두 주인공은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번민하게 된다.


두 대학동창의 12년간에 걸친 만남과 헤어짐을 그렸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얼개는 엇비슷하다. 해리와 샐리의 감정은 비슷한 시기에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우재와 연수의 감정곡선에는 시간차가 있다.


우재역 설경구의 연기는 사실적이다. 따스한 속마음이 투박한 겉모습에 갖혀 전달되지 못하는 남자의 고민을 드러낸다. 연수역 송윤아도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여심을 잘 소화했다. 카메라는 두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현장감을 더해준다. 배우들의 감정선을 연결시키기 위해 롱테이크(오래찍기)와 팬촬영(좌우 돌려찍기) 등이 자주 사용된 결과 커트(연속적으로 촬영된 필름)수는 일반영화의 절반 수준인 500여개에 불과하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버스터미널과 식사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적절히 암시한다. 세 차례의 터미널신은 모두 남녀의 엇갈림을 풍자하고 있다. 두 주인공은 가고 싶어하지 않는 상대를 떠나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사장면에선 어쩐지 음식맛이 없어 보인다. 우재가 단독으로 등장하거나,우재와 연수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만 남게 되는 마지막 식사 장면은 성찬이 준비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맛있는 음식이란 훌륭한 전희와도 같다.


그러나 인물들의 행동에 동기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채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묘사방식은 약점이다. 자기표현에 익숙한 신세대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9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