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미래 일본서 찾는다] (2) 비웃음속 강행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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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비웃음 속에 강행한 투자
"30년 후에는 분명히 시장이 있다는 걸 믿었죠."
한국 대만이 가격으로 치고 나올 때 첨단소재 개발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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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심장부 니혼바시(日本橋)의 미쓰이타워.지난해 완공된 39층짜리 최신식 이 건물엔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은 일본의 대표 화학섬유업체인 도레이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최첨단 건물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도레이 원사를 사용해 만든 각종 의류와 커튼,카시트 등 섬유 제품이 28층 로비에 진열돼 있다.
여느 평범한 섬유회사의 모습이다.
"옥수수 전분에서 실을 뽑아 만든 것들입니다.
땅에 묻으면 완전히 분해되는 친환경 제품이죠."
마중 나온 마에다 이치로 도레이 홍보실장이 자랑했다.
깜짝 놀라 "이 제품에서 매출이 발생하냐"고 묻자 "아직 원가가 비싸 시장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언젠가는 엄청난 시장이 생길 것으로 믿고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섬유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이라는 인식 아래 '탈섬유'를 외치고 있는 한국 업체들과 달리 도레이 데이진 등 일본 화섬업체들은 꾸준히 '미래의 시장'을 노리고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고분자화학 유기합성화학 생명공학 등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역을 계속 창출하기 위한 전략에서다.
"1960년대 후반 일본 화섬업체들은 한국 대만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위기에 처했습니다.
도레이가 탄소섬유에 R&D(연구개발)투자를 시작한 건 그 즈음이죠.철보다 4배 가볍고 10배 강한 섬유랍니다.
항공기나 로켓트의 내열재로서 엄청난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물론 모두들 비웃었고 함께 시작했던 미국 회사들은 중도하차했죠."(오카와 미치오 도레이 고문)
비웃음 속에 시작한 투자인데다 시장도 좀처럼 커지지 않았다.
일본에는 항공기 시장이라곤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우선 낚시대 골프채 등 레저용품에서 시장을 창출했다.
그렇게 쌓은 기술로 1982년 처음으로 항공기인 보잉 757과 767 부품의 일부와 우주선인 스페이스셔틀의 동체 일부에 원자재로 납품했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성능을 향상시키고 가격을 낮춰 지금은 보잉787,에어버스 A380같은 최신 항공기의 1차 구조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용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오카와 고문은 '섬유사업은 사양산업'이라는 말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현재 세계인구가 63억명인데 40년후에는 20억명 더 늘어나고 섬유소비량도 현재의 5천4백t에서 1억4천t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도레이는 잠깐 사업이 어렵다고 한 눈 팔지 않고 계속해서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이 긴지로 도레이 섬유사업본부 상무는 "일본은 섬유 순수입국으로 수요량의 92.4%를 수입하지만 가격으로 보면 수입액은 57.8%에 불과하다"며 "일본에서 만드는 섬유는 고가의 첨단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2위의 화섬업체인 데이진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초반부터 우주복 방탄복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섬유에 투자해 듀폰과 함께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의약소재 사업도 탄탄하다.
도레이의 오카와 고문은 투자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성공한 투자보다 실패한 투자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기존 제품의 품질을 계속 향상해 '캐시카우(수익창출원)'를 확보하면서 인내와 끈기를 갖고 투자해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데이진의 요시카와 마사루 이사는 "데이진의 경우 볼보자동차의 일본 내 딜러 사업도 해 봤고 해외 석유탐사사업에도 나서봤지만 결국 우리의 핵심기술에 집중했던 투자가 지금의 데이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도쿄=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