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돼지고기볶음은 NO,흑미샐러드 치킨카레는 OK.' "여성 휴게실은 있는데 왜 남성용은 없는 겁니까? 전날 늦게까지 부서 회식을 하고 난 뒤엔 우리 남성들은 상사 눈치보며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아야 한다니까요. '그녀'들은 휴게실에 가서 잠을 잘 수 있는데 말입니다."(A사 고참 대리) "면접 때 남자에게 가점을 안 주면 아마 신입사원의 90%는 여자로 채워질 겁니다.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이나 논리에서 여자들이 월등하거든요."(B사 채용담당 임원) '신(新) 모계사회'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직장과 가족 내 풍속도 역시 바뀌고 있다. 전체 고용 시장의 40%가량이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에 남성의 '반항'은 그저 '어리광'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직원식당에서 지난달 벌어진 풍경.하지성 대리는 여느 때처럼 점심 식사를 위해 내려갔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삼계탕이 나오는 날이라고 해서 갔더니 닭이 반토막이더군요." 닭이 반마리로 나온 사정은 이랬다. 지난해부터 매달 1회 각 매장별로 1명씩의 여직원을 모아 '점심메뉴 품평회'를 열고 있는데 여기에서 여직원들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삼계탕을 반계탕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반계탕은 그나마 다행이다. 매번 품평회가 끝나면 꽁치조림 돼지고기볶음 등 냄새 나는 음식은 자취를 감추고 김치떡볶이 흑미샐러드 치킨카레 녹차수제비 등 여성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속속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울 문정동에 신혼 살림을 차린 이정호씨(32)는 지난해 추석 때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명절 연휴 첫날 고향갈 채비를 하고 있는 이씨에게 아내는 "설에는 시댁에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집에 가는 게 맞지 않느냐"며 따지듯 말해 한바탕 부부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씨는 처가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다. "평소 맞벌이를 하고 있는 데다 집안 큰일에서부터 작은일까지 모두 공동으로 처리하다 보니 속된 말로 '말발'이 서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추석 때 처가에 다녀오는 걸로 못박을 생각입니다." 전문가들은 '여풍(女風)' 현상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산업구조 자체가 제조업 중심에서 여성의 참여가 활발한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외식,식음료 업계는 올해 전체 채용 인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6.5%를 여성으로 충원할 계획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