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도는 도쿄지만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는 교토다.


교토 사람들은 일본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동부 도쿄대와 서부 교토대는 양대 국립대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관계에선 도쿄대가 우위지만 연구 분야에선 교토대가 앞선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도 교토대가 가장 많다.


다치바나키 도시아키 경제학부 교수(63)와 신년 대담을 위해 찾은 교토대 캠퍼스는 연말인데도 연구 열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다치바나키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3000명의 회원을 둔 일본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올해는 한·중·일 3국 관계가 격동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5년 반 만에 총리가 교체되는 일본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국경제와 관련,"일본의 좋은 점만 받아들이고 나쁜 점을 버린다면 한국은 세계 수준의 경제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 대담 = 최인한 도쿄특파원 ]


-2006년에도 일본경제 회복세가 지속될까요.


"경기 회복세는 계속됩니다.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소폭 떨어져 2% 선을 밑돌 수 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 것입니다.


선진국인 일본이 성장률을 더 높이려면 국민들이 일을 훨씬 더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 하반기 일본에선 국가 지도자가 바뀝니다.


연초부터 정치권에서 후계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시작되면서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총리가 등장하면 대외 경제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으로 봅니다."


-금융회사들의 불량채권은 일본경제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완전히 해결됐습니까.


"정부 발표대로 불량 채권 문제는 해결됐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중소 금융회사 중 문제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앞으로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과제는 우정 민영화의 실행입니다.


작년 하반기 민영화 법안 처리로 향후 10년에 걸쳐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100조엔 이상의 자금이 민간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 자금이 국내 기관으로 갈지,외국계 기관으로 갈지에 따라 금융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일본경제 구조가 시대 변화에 뒤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의 일본경제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조업에서 일본의 비교 우위 시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중국 등에 밀리는 분야가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일본이 경제 선진국으로 살아남으려면 취약한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금융 보험 의료 유통업 등은 세계 수준과 차이가 많아요.


IT(정보기술)산업은 일본이 그리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보기술 분야에선 일본 보다 한국의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 개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최대 업적을 꼽는다면 불량 채권 처리에 성공한 것입니다.


강력한 정책 집행으로 금융기관이 안정을 되찾아 일본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것은 평가하고 싶어요.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이 민간주도 경제를 지향하면서 지나치게 미국식 경제 시스템을 강조한 결과 소득 분배가 나빠졌어요.


일반인의 예상 이상으로 사회 계층 간 격차가 심해진 상태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중시하는 미국식 사회가 좋다는 의견도 늘고 있지만 지나친 소득 격차는 좋지 않습니다."


-오는 5월 일본게이단렌 회장이 교체됩니다.


재계에 변화가 있을까요.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의 게이단렌 회장 취임은 일본경제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제조업 중심으로 흘러온 일본경제 구조 변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봐요.


자민당은 시장경제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정당이라 재계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재계와 정치권은 일본경제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 나갈 것입니다."


-세계경제는 어떻게 전망합니까.


"전공이 일본경제라 세계경제에 대해 깊은 전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환율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봅니다.


엔·달러뿐만 아니라 위안화 환율 문제가 국제적으로 최대 쟁점이 될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관계가 악화된 상태입니다.


양국 간 무역 관계에서 위안화 환율 문제가 새로운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 경제에 영향을 주는 최대 요인은 무엇이 될까요.


"아시아 지역에선 경제보다 정치적으로 요동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한·중·일 3국 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큽니다.


9월 실시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에 따라 아시아 지역에 회오리 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보수 강경파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총리가 된다면 정치는 물론 경제 측면에서도 아시아 각국 간 마찰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베 장관이 차기 출마를 피할 것이라는 예측도 하지만 정치가에게 기회가 항상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번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아요."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역동적이고 성장 잠재력도 커 발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남북 통일이 부담이 될 것으로 봅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취약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게 확실합니다.


독일도 통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충분히 대비해야 합니다."


-한국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경제 선진국이 됐습니다.


한국은 일본경제의 발전 과정을 교훈삼아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나쁜 점을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본경제 성장에는 대기업그룹 체제가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그룹 전체가 지원하고 협력해 짧은 기간에 세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세계 1위 자동차메이커로 올라선 도요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면 관료의 힘이 세고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입니다.


경제가 선진화되려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정치적 이유로 작년 말 한·일 정상회담이 취소됐습니다.


올해 한·일 경제 관계 전망은.


"고이즈미 총리는 주관이 강하고 완고한 정치인입니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정치권 내에서 반대가 많지만 강행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기간 중 한·일,한·중 관계가 지금보다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고이즈미총리는 FTA(자유무역협정) 협상도 차기 총리에게 미룬 것으로 보입니다.


9월에 선출되는 차기 총리에게 기대를 걸고 싶습니다."


-일본 사회의 계층 변화와 부자학 연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본에선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또 시대 변화에 따라 부자의 얼굴도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직업별로 보면 대표적인 부자는 기업가와 의사입니다.


기업가의 경우 변화가 뚜렷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중후장대한 기업의 경영자 중 부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IT, 소비자금융 등 새로운 업종에서 신흥 부자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대학생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젊을 때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체력을 갈고 닦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인재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한국과 일본의 두 나라 젊은이들이 상대방을 좀더 많이 이해하고 협력해 공동 번영의 기틀을 다져가길 바랍니다."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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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3년생


△오타루 상과대학 졸업,오사카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경제학박사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객원 교수


△경제기획청 객원 주임 연구원,일본은행 객원연구원


△현재 교토대학 경제학부 교수겸 일본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