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던 1945년은 우리 담배역사에도 획기적인 해로 기록된다. 군정청이 광복을 기념해 만든 궐련담배인 '승리'가 우리 기술진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엔 쌈지담배라고 하는 '풍년초'가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는데,하얀 종이로 둥글게 말려진 담배가 나오자 그 호기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값이 비싸 아무나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애인을 만난다든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이 피우는 '과시용'이었다고 한다. 승리가 그렇듯,우리나라 담배는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이름이 많았던 것 같다. 48년 정부수립을 기념해서 발매된 담배는 '계명'이었고,새마을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시판한 '새마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까지 썼다. 올림픽을 기념해서는 '88라이트'가,대전엑스포를 기념해서는 '엑스포 마일드'가 나왔다. 최초의 군용담배인 '화랑'은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고된 병영생활의 추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1970년대부터는 질 좋은 담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시 최고급 담배였던 '청자(100원)'는 웃돈을 주고 살 정도였으며,대대적인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싼 양담배가 기승을 부린 것도 이 때였다. 이후 고급담배들이 양산되면서 판매량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1980년 450원에 출시된 '솔'이 대표적이다. 고급담배로 출발한 솔은 한동안 시장점유율이 60%를 기록하면서 연간 20억갑이 팔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담배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가격을 200원으로 내려 단박에 최저가 담배가 됐다. 이 솔 담배가 채산성 악화와 유통과정의 문제점 등으로 25년만에 생산이 중단된다는 소식이다. 나무나 귀하고 비싼던 '승리',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전국에 청자다방을 유행시켰던 '청자',최장수 담배였던 '화랑'에 이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피운 '솔'도 이제 하얀 연기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