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생기 발랄 작업녀 남자 몰러 나간다 '작업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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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 '클래식''연애소설''내 머리속의 지우개''외출' 등에서 손예진은 청순가련한 여성의 대명사 같은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것은 간판 멜로 여배우에게 영화 관객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기환 감독의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거짓과 위계를 천연덕스럽게 꾸며대는 발랄한 '연애선수'역을 맡았다. 오랜 단짝에게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까발리다가도 매력적인 남성 앞에서는 얌전하고 우아한 '백조'로 돌변한다. '작업녀'와 '내숭녀'를 오가는 두 얼굴이 혐오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양자 간의 간극이 클수록 관객의 웃음도 커진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특유의 긴 생머리를 우아한 웨이브머리로,단정한 매무새를 섹시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바꾸었다.
그녀의 기존 이미지가 다분히 윤색된 느낌이었다면 이번 배역은 훨씬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의 정석'은 손예진의 영화다. '범생이'에서 '바람둥이'로 변신한 상대역 송일국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인물이다.
이 작품은 결혼을 통해 사랑의 환상을 기필코 실현하려는 농촌 총각들을 그린 '나의 결혼원정기'와는 반대편에 있는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등장인물은 연애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여러 명의 '사냥감'을 동시에 쫓는다. 이런 행보는 스스로에게 쾌락을 선물하려는 인간 의지의 발현이다. 도덕적으로는 금기시돼 있지만 쾌락은 분명 행복과 연결되는 길 중의 하나임을 상기시킨다.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연애의 말로가 비참해지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당당하다.
그들은 또한 진지한 관계를 다룬 연애영화 속의 주인공에 비해 관대한 태도를 견지한다. 서로의 속임수를 알고도 기꺼이 속아주는 것이다. 다만 절정부의 파괴력이 약하다. 두 남녀가 서로를 유혹의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그들은 이미 상대의 본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반전의 계기가 있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