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씨 다섯번째 시집 '수탉'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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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고진하 시인(52)이 다섯 번째 시집 '수탉'(민음사)을 펴냈다.
네 번째 시집 '얼음수도원' 이후 4년 만이다. 시인은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생명으로 가득찬 사물들을 통해 시인의 삶과 생명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표현하고 있다.
'늦은 봄날 오후/ 마른천둥이 우르릉 우르릉 배경음악을 깔아주는/ 시골 공터,임시로 설치한 조그만 원형경기장 쇠창살 속에서/ 황금빛 목털을 쥘부채처럼 활짝펼친/ 수탉과 수탉 맞짱 뜨고 있었네. …짜릿한 영상 같은/ 닭싸움을 지켜보면서 나는/ 늦은 봄날의 권태와 나른함을 휘휘 날려보냈네'('계명성-투계(鬪鷄)를 보다' 중)
시인이 마냥 삶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삶과 같은 곳에 있음을 시인은 직시한다.
'…내 마음이 폐허가 되었을 때에도/ 이토록 적막하지는 않았었네/ 화마(火魔)가 휩쓸며 삼켜버린 솔숲/ 재의 오솔길을 지나/ 재의 사원(寺院)에 이르는 동안/ 괴괴한 고요가 사뭇 발걸음을 무겁게 했네. …하늘을 쭉쭉 뻗어 있는/ 숯덩이나무와/ 숯덩이나무 사이를 지나며/ 아직도 빌 무슨 소원이 남아 있을까.'('붉은 비명-낙산사에서' 중)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불만을 재치있고 유머스런 필치로 풀어낸 점도 재미있다.
'누가 방음벽을 설치해놓았을까 아흔이 되신/ 노모의 귀는 캄캄절벽이다/ 그 절벽에 대고/ 고래고래 고성을 질러봐야/ 말들은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고 만다'('몸을 얻지 못한 말들이 날뛸 때' 중)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