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타계한 친구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에게 보내는 글을 국정브리핑 블로그에 담아 화제가 됐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따로 만나 식사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정 위원의 칼럼에) 답을 주려고 했는데 그만 이 친구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정 위원은 지난해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통과 문제로 시끄러울 때 '나라 위해 우리 변절합시다'라는 편지 형식의 칼럼을 썼다. 수신자는 강 위원장.그러나 강 위원장은 당시 공직 신분임을 이유로 답을 하지 않았다. 20일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재계와 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눈길을 끈 부분은 "저도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대목.그는 "성이 '강'씨이고 이름에 '철'자가 들어가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강철'같은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규제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재계를 사랑하고 재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재계의 반응은 '글쎄올시다'다. 재계가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을 때,삼성전자가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하소연했을 때도 강 위원장은 재계의 소리에 귀를 닫고 말았다. 공정위의 강제조사권 신설은 부당하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그는 그저 '마이웨이'를 불렀을 뿐이었다. "최근 들어 공정위가 원칙과 룰에 따라 법을 집행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가 많아져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에 이르면 재계의 실소가 터져나온다. "유럽 기업들은 경쟁당국(공정위와 같은 성격의 기관)의 제재조치에 100% 소송을 제기하지만 한국은 소송 제기율이 3%대에 불과하다"는 공정위의 자찬을 업그레이드한 셈이니 말이다. "공정위의 칼날이 무서워 그렇지,불만이 없어서 소송이 줄었겠느냐"는 재계의 반응은 이미 남의 얘기다. 재계는 임기 말에 와서 갑작스럽게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공정위원장 발언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차기 위원장이 큰 칼을 휘두를지라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의 기업 환경만큼은 제대로 인식할 줄 아는 인물이길 바랄 뿐이다. 안재석 경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