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 과학기술부 차장 >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3년 당시 프랑스의 저명 물리학자였던 르네 블론로 교수는 새로운 방사 광선인 N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뢴트겐에 의해 X선이 발견된 지 불과 7년 뒤의 일이었다. 블론로 교수는 이 방사선이 X선에 비해 굴절이나 반사가 훨씬 잘되는 특수선이라고 강조했다. 블론로의 획기적인 발견이 공표되자 프랑스 과학원이 엄청난 금액의 연구비를 그에게 대주는 등 그는 프랑스의 과학 우상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로버트 우드 교수는 이 광선의 존재를 수상하게 여긴 나머지 프랑스로 건너가 N선이 나온다는 블론로의 프리즘을 훔쳐 실험했다. 그 결과 이 광선은 명백한 거짓으로 판명났다. 그러나 블론로 교수를 앞세워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려 했던 정치인들은 검증 결과를 믿지 않았다. 더욱이 외국인인 미국의 과학자가 자국내 연구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을 적대시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연구 검증을 불투명하게 처리한 프랑스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N선의 존재에 대해서도 더 이상 연구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블론로 교수 사건으로부터 90년 뒤인 1989년 미국에서는 유타대의 플라이슈만과 폰즈 두 교수가 상온에서 핵융합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두 교수는 이 기술을 응용하면 무한의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며 곧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곧 동료 교수들의 검증을 통해 데이터를 잘못 처리한 명백한 거짓으로 판정이 났다. 유타대는 곧바로 조사위원회를 열어 두 교수를 해임 조치하는 한편 연구에 대한 모든 잘못된 데이터를 공개했다. 미국 과학계는 자국에서 이뤄진 연구성과였지만 잘못된 부분에 대한 과감한 검증을 실시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외국 과학계의 신뢰를 쌓았다. 과학자들은 투명하게 검증된 이 연구결과를 놓고 다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상온 핵융합이 불가능하다는 그동안의 인식을 바꿔 혹시 다른 방법을 적용하면 진짜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과학자들에게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공개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기반이 됐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차라리 이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시각이 일부에 있다. 국내 과학계가 당장 칼바람을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에 공개적이고 투명한 경영이 정착한 것처럼 이번 사건이 과학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게 된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과학연구의 엄밀성이나 진실성 여부에 대한 보다 철저한 검증 등 세계 과학계가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추는 데에도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황 교수 파문이 우리 과학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발 더 다가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와 논문 작성과정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들이 조금이라도 파묻히거나 덮어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응당 가려서 책임질 것은 져야 할 것이다. 황 교수를 비롯한 관련 인사들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