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스산한 연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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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산 < 소설가 / 대하소설 '삼한지'작가 >
발을 다쳐 한동안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본다.
며칠 전에는 한 젊은 부부가,남편은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른 채 기다리고 부인은 복도 바깥에까지 나와서 불편한 나를 부축해주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번잡한 공공장소에서 식구처럼 살뜰한 인정을 베풀 때 느끼는 감동은 참 세상을 아름답고 살맛 나게 만든다.
아울러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본성이 어떻고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한순간에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하나를 보고도 열을 안다던 옛 어른들 말씀이 무얼 뜻하는지 비로소 알겠다.
고작 두어 달 지팡이를 짚었는데도 이런데 오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얼마나 세상을 보는 눈이 밝으랴.
가난도 마찬가지다.
궁한 시절을 겪어보지 않고 사람노릇을 하기란 어렵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가난만큼 내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스승은 없었다.
가난했던 덕분에 세상과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고 그건 마치 오랫동안 짚고 다닌 정신적인 지팡이와 같다.
가난은 부자가 알아채거나 느끼지 못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 사람이 되는가를 여실히 가르쳐준다.
장애나 가난은 세상의 음지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질은 양지에서 얻지만 정신적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음지에서 얻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불편한 사람,가난한 사람,집과 직장을 빼앗긴 사람,가족과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더욱 서럽고 스산한 연말이다.
당초 포근한 겨울이 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혹한은 겨울 초입부터 맹위를 떨치고 폭설은 국토 서쪽을 아예 묻어버렸다.
이런 와중에도 국회는 그들의 밥줄인 국민 면전에서 여전히 발길질과 멱살질이고 고액 봉급자인 항공사 조종사들 역시 그들의 밥줄인 승객을 볼모로 파업을 벌인다.
과학자와 방송사,여승과 천성산,경찰과 검찰,노동계,교육계의 갈등과 투쟁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단언컨대 갈등 없는 사회란 없다.
삼국시대에도 갈등은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가 흥하고 망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갈등을 조절하는 기능의 유무에 달렸다.
국가와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마음 속에도 있는 게 갈등이다.
비록 갈등을 느끼지만 그때마다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갈등조절 기능이 마비된 지 오래다.
무조건 제 형편만 내세워 힘으로 몰아붙이고 그게 안되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일관하는 게 무슨 통념처럼 돼버렸다.
상대를 고려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이성을 가진 집단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대통령과 총리는 한때 한국사회의 음지에 있던 분들이다.
남들만큼 어려움도 겪었고,없는 사람 형편도 잘 알고,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청년 같은 이미지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수시로 해대는 분별없는 발언을 보면 혹시 본분과 명색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국민 대부분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심각한 박탈감에 사로잡혀 있고 피부로 실감하는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수년째 살인적인데도 행정부 수장들이 심기일전할 각오는 하지 않고 1988년 이후 가장 안정됐다느니,행복한 대통령이라느니 딴 세상 얘기나 하고 있으니 연말이 더욱 스산하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은 1988년 이후 가장 극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지금 너무도 불행한 게 현실이다.
음지를 겪고도 그 음지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가장 몹쓸 사람이다.
무언가 다를 줄 알았던 기대를 저버린다면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집단보다 역사적 응징을 받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