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품질혁신을 책임지겠습니다. 리콜을 거울삼아 더욱 강화된 검사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극심한 내수침체와 '압력밥솥 폭발사고'로 이중고를 겪던 지난해 6월 중순. LG전자 노조는 조합 명의로 주요 일간지에 이 같은 내용의 광고를 냈다. 노조는 발빠르게 노조 간부 200여명을 중심으로 58개 특별순회서비스팀도 구성했다. 아직 리콜에 응하지 않은 소비자들을 찾아나서기 위해서였다. 또 매주 휴일마다 조합간부와 조합원들이 주요 사업장 부근의 대리점과 대형전자제품 매장으로 출근했다. 이들은 소비자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판촉전단을 나눠줬다. 일부 노조 간부들은 대형 가전제품의 주요 수요처인 건설현장을 방문, LG에어컨 '휘센'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위기극복'을 위한 LG전자 노조의 적극적인 참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국제영업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노조는 지난 8월 김쌍수 부회장을 초청해 '노경(勞經)특별 간담회'를 열었다. 노사협력 사안을 점검한 뒤 노조는 김 부회장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했다. "현장을 더 열심히 발로 뛰어 위기를 극복해달라"는 노조원들의 염원을 담았다. 김 부회장은 답례로 노조에 휴대폰을 선물하며 "위기극복에는 노사가 따로 없다"며 "조합원들이 현장의 소리를 생생히 들려달라"고 화답했다. LG전자의 이 같은 노경간 협력관계는 국내외 주요 기업들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생'의 관계가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노사 양측은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고서야 '노경의 협력만이 기업과 노사 모두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실증적 교훈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사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LG전자 노조는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측과 노측은 조그마한 사안에도 양보없이 사사건건 대립했다. 노사 불신은 87년과 89년 두 차례의 대규모 노사분규로 극에 달했다. 연이은 두 차례 분규로 LG전자는 매출손실 6000억원과 50여일의 근로일수 손실로 창사 이래 최대 경영위기에 빠져들었다. 일시적으로 불량률도 치솟아 매장에서 LG제품들이 외면당하기도 했다. 회사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노경은 지난 93년 '노사공존공영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듬해엔 '신노경문화선언' 등으로 노경화합의 결의를 다졌다. 95년엔 국내 최초로 공동체적 노경관계의 정립과 세계최고의 품질 및 생산성 확보를 노경이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의 '노경헌장'을 채택했다. 노경은 이후 열린 경영,노경간 커뮤니케이션,인력자원 개발 및 활용,작업장 혁신,성과배분제도 시행,전향적 복지제도 실시 등으로 노경협력을 구체화했다. 경영진층의 솔선수범도 신뢰구축에 일조했다. 대규모 분규 이후 LG전자의 대표이사는 노경간 임단협,노경협의회 등 모든 회의에 참석해 노조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특히 노경협의회 때마다 노조와 경영실적을 공유하고 LG 임원진들의 권위주의 일소에 앞장 섰다. 일부 경영진은 이른 아침 출근해 현장을 청소하고 기계를 워밍업시키는가 하면 사원들의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기는 정성을 보였다. 지난 2003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쌍수 부회장은 노조방문으로 CEO 첫 업무를 시작할 정도로 노정 협력에 적극적이다. 이 같은 LG전자 노경의 상생적 관계는 '생산성향상→성과증대→공유원천확대→성과공유→동기부여→노경협력→생산성 향상'이란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가급등,원자재값 폭등으로 기업환경이 악화일로에 있지만 LG전자의 경영실적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8100억원의 경상이익을 낸 데 이어 2003년엔 경상이익이 1조2500억원,지난해엔 1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