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키티제노바스라는 여성이 귀가 도중에 강도를 만났다. 성폭행을 하려 덤비자,그녀는 소리를 질러댔고 이에 놀라 강도는 도망갔다. 이상한 점은 38명이나 비명소리를 들었는데도 정작 구해주려 나타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강도는 다시 돌아와 이 여성을 폭행했고 결국 그녀는 살해됐다. 언론은 매정한 회색도시의 한 단면으로 몰아붙이며 인정머리없는 세태를 한탄했다. 여러 학자들은 사회의 도덕적 해이로 이 사건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달리와 라타네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사람이 비명을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실험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져 방관자로 변한다는 얘기다. 소위 '책임감 분산'이론이다. 최근 독일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연구팀은 공공장소에서의 '방관자 효과'에 관해 노상실험을 했다. 결과는 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경꾼 수가 많을수록 방관자 효과가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위험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는 겨우 6%만이 싸움에 관여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우리 주변의 일상생활에서도 방관자 효과는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조직 전체에 배정된 일을 서로 눈치보며 미룬다든지,똑똑한 사람들 해보라는 식으로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든지,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다름아닌 방관자 효과인 것이다. 다만 정치가들은 예외로 친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방관자가 많은 사회는 실로 위험하다고 한다. 소외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사회적인 책임을 피하려 하고,자기 변명과 합리화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하철에 떨어진 장애인을 구하고,흉기를 든 소매치기를 잡고,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의인들이 있기에 방관자 없는 세상을 꿈꿔 보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