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꿈이 소박했다. 그저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정도였다. 가느다란 담배,남자들은 싫어할 줄 알았다. 국내시장 점유율 1위 담배 '에쎄'는 그렇게 출발했다.


KT&G의 '에쎄(esse)'는 이탈리아어로 '그녀들'이라는 뜻. '초슬림형' 담배의 주요 소비층이 여성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1996년 출시된 이후 한동안 시장 점유율은 1% 안팎을 맴돌았다. 3년이 흐른 1998년에야 겨우 2%대에 턱걸이 했다. "그만 접자"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에 시장점유율이 8.3%로 뛰어오르더니 2002년엔 20.3%로 급성장했다. KT&G는 그야말로 '불붙은 호떡집'이 됐다. 연일 마케팅관련 긴급회의가 열렸다. 에쎄의 돌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두들 혼란스러웠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초슬림형 담배가 주력 상품이 된 곳은 없었다. 처음엔 대부분 "그러다 말겠지" 그랬다. 알고보니 한반도를 강타한 '웰빙 바람'이 발화물질이었다. 얇다란 담배가 몸에 덜 해로울 것이라는 인식이 너도나도 에쎄를 찾게 만든 것.


문제는 에쎄 생산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 신속하게 생산라인을 확장하지 못했다. 기계 한 대가격이 60억원을 넘는데 섣불리 투자할 순 없었다.


대학의 통계학자와 경제학자들에게 미래수요를 예측해달라고 의뢰까지 했지만 속시원한 답은 얻질 못했다. 그러는 동안 담배 소매점들로부터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 판매원들이 소매점 가는 걸 무서워할 정도였다. 부랴부랴 외국에서 기계를 들여왔지만 한동안 수요와 공급은 불일치했다.


지난 9월 말 에쎄의 누적 판매량은 1000억개비(50억갑)를 넘어섰다. 출시 9년 만의 성과다. 국내시장 점유율도 31.3%로 높아졌다. BAT 필립모리스 등 외국 유명 담배회사들이 뒤늦게 '초슬림형'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힘만 빼고 돌아섰다.


에쎄는 수출전선의 첨병으로도 나섰다. 지난 2001년 590만개비로 시작한 에쎄의 수출실적은 △2002년 1억개비 △2003년 13억개비 △2004년 32억개비로 급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60억개비로 늘어날 전망이다. 연 평균 성장률이 400%를 웃돈다. 해외에서도 '에쎄 신화'가 싹트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