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참을수 없는 가벼움‥황성혁 <황화상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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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 < 황화상사 사장 shhwang@hwangco.com >
그녀는 아는 것이 많고 특히 말을 잘한다.
국제정치에서부터 아프리카 오지의 환경문제까지,사소한 동네 가십부터 복잡한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의견은 쉴 사이 없이 분출된다.
남들에게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참지 못한다.
컴퓨터를 켜서 모든 것이 팍팍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네거리에서 차가 멈추면 푸른 신호로 바뀌는 동안 그녀는 안절부절못한다.
엘리베이터는 타기가 무섭게 문이 닫혀야 하며,문이 닫히고 있는데도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녀는 노래방 가기를 좋아한다.
가능한 한 마이크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노래는 대부분 세상에 갓 나온 아무도 모르는 노래들이다.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불러내는 동안,같이 간 사람들은 짜증을 내거나 하품을 하기 일쑤다.
나는 말한다.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많은 사람들이 그대보다 나은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의견이 그대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판명날 때 의견을 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유식해 보일 것이고,그대의 말은 모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컴퓨터를 켜고 나서 옆 벽에 걸린 달력을 한 번 쳐다 보아라.네거리에 차가 섰을 때 계절에 맞춰 입성을 바꾸는 길 옆의 가로수 한 그루를 바라 보아라.어느 새 컴퓨터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고 신호등은 파랑으로 바뀌어 오히려 뒷사람들이 경적을 울릴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가만히 두면 스스로 움직일 줄 아는 편한 기계다.
움직이는 것까지 건드려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잘 아는 노래를 부르면 그대도 부르기 쉽고 듣는 사람은 또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녀는 말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컴퓨터건,자동차건 이 바쁜 세상에 팍팍 움직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노래를 불렀다 하면 튀는 것으로 불러야 돼요.
남들 하는 것 따라 해서는 재미가 없어요.
그녀가 우리 사회의 표상이 되어간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특히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들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 있다.
왜 꼭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지.왜 모든 것은 건드리기만 하면 팍팍 뜻대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왜 남들과 달리 톡톡 튀어야 하는지.왜 가벼운 말 한 마디로,행동거지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자신을 후회의 늪으로 빠뜨리고,밤낮 없이 변명에 매달려야 하는지.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자.세상은 스스로 움직일 줄 알며,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필요한 힘을 가하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것을 배우자.특출한 것보다 보편적 지혜가 아름다운 것임을 이해하자.그러면 우리사회는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운 곳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