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정관읍의 술 회사 '천년약속'의 김성열 사장(42). 그는 요즈음 태어나서 가장 가슴 죄며 흥분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8일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연회에 참석할 21개국 정상들을 위한 건배주로 '천년약속'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김 사장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1개국 정상들이 우리 술로 건배하신다니… 술회사로선 다시 없는 영광이죠." 기쁨에 들뜬 김 사장의 얼굴 한 편엔 초조한 빛이 비친다.


"저희 술이 여러 나라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의 입맛에 다 맞을지… 불안 초조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 사장은 '천년약속'으로 업계의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2003년 우유 판매회사를 운영하다 제조회사의 부도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김 사장은 동의대 정영기 교수(생명응용과학과)를 만나면서 신화를 이루게 된다.


타고난 장사꾼 김 사장과 과학기술자가 만나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것. 정 교수의 기술 지도로 전통주 시장에 진출한 김 사장은 창업 1년6개월여 만에 기반을 확실히 잡았다.


"판매회사에서 마케팅만 17년 정도 한 게 큰 밑천이었습니다. 좋은 제품만 있으면 파는 데는 자신 있었지만 팔 물건이 마땅치 않았던 터에 정 교수가 만든 상황버섯 균사체로 발효시킨 약주를 맛보게 된 겁니다." 마시는 순간 '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김 사장의 머리를 스쳤다.


김 사장은 정 교수에게 상품화해 볼 것을 제안했고 정 교수는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김 사장은 회사를 운영하고 정 교수는 상임고문 겸 연구소 소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김 사장과 정 교수는 회를 많이 먹는 부산의 풍토를 감안해서 12∼14도짜리 균사체 발효주를 시판하기로 결정했다. 상품명도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하면 천 년 동안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에서 '천년약속'이라고 정했다.


김 사장은 2004년 6월 임대 공장에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김 사장의 장기인 '맨 투 맨' 전략이 진가를 발휘했다.


"돈을 들여 광고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명주(名酒)는 입소문이 나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가호호 술집 밥집을 찾아 다녔습니다." 고급 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고위 공무원들의 회식 자리 등을 찾아 다니며 판촉 술을 제공했다.


"일부러 향토 사투리로 '부산 술입니데이' 하며 애향심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교수가 만든 술'이라는 광고도 효과를 나타냈다.


"'천년약속'은 누룩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종전의 약주보다 맛과 향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혈전을 분해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상품 설명도 고급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고급 소비층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마트와 대형 할인점들이 찾아왔다.


이 무렵 APEC 정상회담이 부산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김 사장은 부산시에 행사 술로 채택해 줄 것을 건의했다.


"부산시 내부에서도 '천년약속을 지역 대표 전통주로 한 번 키워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대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건배주로 선정되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술의 명성은 부산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천년약속'은 현재 국내 대리점 36곳,해외 대리점 14곳을 둘 정도로 판매망을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현지 주류업체와 5년간 1550만달러어치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천년약속'이 해외로 수출되기까지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샘플을 보냈으나 현지 식품의약청들이 '버섯균사가 14도까지 발효되느냐''가짜 술이 아닌지 증명하라'는 등 짜증이 날 정도로 많은 자료를 요구해 왔습니다. 세계 최초로 성공한 균사발효 기술을 이해시키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천년약속'은 하루 7000병을 생산하는 데도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잘 나간다.


다음 달 말 2300평 규모의 공장이 완공되면 월 생산량이 150만병으로 늘어난다.


APEC 공식 행사주 채택 등에 힘입어 올해 매출은 작년의 3배인 6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김 사장은 밝혔다.


정 교수는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상황버섯 균사체를 이용한 바이오 기술 개발과 포도주 등 과실주 개발에 착수했다. 화장품 빵 요구르트 등의 개발도 구상 중이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