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 특허청장·jongkkim@kipo.go.kr >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 동안 최고의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한 바 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었고 광활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글로벌 통신망도 구축했다. 이로써 뒤떨어져 있던 유럽의 기독교 문명은 선진화된 중국·이슬람 문명을 받아들여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가게 된다. 인구 백만명의 몽골이 불과 십만명의 군사로 25년의 짧은 기간동안 로마군이 400년간 정복한 것보다 넓은 땅을 차지한 것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특히 칭기즈칸의 리더십은 인간능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러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정복도 필연적으로 패전의 아픔과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싸움 자체는 잘해야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레드오션 전략인 것이다. '영토확장의 끝은 멸망'이라고 모든 전쟁 당사자를 패자로 보는 역사인식도 있다. WTO 출범 이후에는 '국경 없는' 무한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과연 그러한가. 성공적으로 국경 장벽을 낮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에도 미국-캐나다 간 무역은 미국 내 주(州) 간 거래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보고서가 나왔었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권, 편리한 교통 등 두 나라는 단일국가처럼 보이지만 국경은 여전히 크고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형태의 영토 확장 붐이 일고 있다. IT발전과 더불어 사이버 영토가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남의 영토를 뺏을 필요도 없이 무한대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블루오션 전략이다. 넓은 서류창고 대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손쉽게 키워드 검색을 하고,많은 수송수단을 동원할 것 없이 클릭 한번으로 인터넷 자료 송수신을 하며,백화점보다 큰 사이버매장에서 상품거래가 이루어지고,대형 컨벤션 홀도 수용할 수 없는 수천 수만의 네티즌들이 한꺼번에 토론에 참여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공간·비용을 절약하고 있는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사이버 영토 건설을 계기로 우리는 이제 유비쿼터스 시대로 간다. 어느 때,어느 장소,어느 네트워크,어느 기기로,어느 서비스(5-Any)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제록스사의 마크 와이저에 의해 유비쿼터스 개념이 제시된 지 14년이 지난 지금 IT를 이을 차세대 산업의 한 기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우리는 물리적 영토는 크게 차지하지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이버 영토를 갖게 될 것이다. 칭기즈칸보다 더 빠르게 확장하고 활용해 가고 있어 유비쿼터스 세상도 제일 먼저 경험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칭기즈칸의 정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적이고 애국가처럼 '길이 보전할' 사이버 영토를 가꾸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