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라이키 아고라(Laiki Agora)'입니다. 여기서부터 주차하지 마세요."


그리스 아테네 시내 아크로폴리스 인근 주택가인 디노스트라토 길거리에는 매주 월요일 이런 내용의 팻말이 선다.


1주일에 한 번씩 서는 시장인 라이키 아고라의 개장을 알리면서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그리스식 '7일장(場)'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키 시장이 등장한 지는 50년 정도 됐다.


산지 농가와 도시 서민들을 바로 연결해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싸게 공급하고 농가도 살리자는 취지에서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의 '농부시장(파머스마켓)'과 흡사하다.


몇년 전부터 까르푸(프랑스) 니들(독일) 등 대형 할인판매점이 속속 상륙함에 따라 이들로부터 영세 생산농가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이 시장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라이키 시장은 아테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마다 구역별로 돌아가며 열린다.


요일별로 시장이 서는 장소가 사전에 지정돼 있어 이곳 주민들은 월요일에는 A지역,화요일에는 B지역 시장을 찾아가는 식으로 거의 상설시장처럼 이용한다.


보통 골목 한 개 전체가 시장이 된다.


야채와 과일 좌판이 설치되는 장소는 상인별로 번호까지 붙어 지정돼 있다.


허가를 받은 상인들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리가 비었더라도 다른 사람이 차지할 수 없다.


허가를 받은 상인이라도 서로 자리를 바꾸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


더욱이 허가증이 없는 사람들은 번호가 붙어 있는 구역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


장사는 꽤 잘된다.


대부분이 농민인 상인들은 대를 이어 수십년 동안 거의 자리이동 없이 점포를 운영해 믿을 수 있는 데다 야채와 과일도 생산지에서 바로 갖고 와 싱싱한 것을 싸게 팔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상품별 생산지와 ㎏당 얼마 하는 식으로 가격을 써놓는다.


또 같은 고추라도 상인마다 생산지가 다르기 때문에 서민이나 부유층 모두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다양하게 살 수 있어 즐겨 찾는다.


그런 만큼 허가증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20년째 채소류를 팔고 있다는 40대의 엘렌씨(여)는 "아테네 라이키 아고라에서만 2만5000명의 상인들이 영업하고 있다"면서 "최근 몇년 동안에는 허가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대부분의 영세 농민인 기존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장사는 가족들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괜찮은 편이어서 허가를 받으려고 각종 연줄을 통해 웃돈을 건네는 일까지 있다"면서 "그래도 대부분 몇년씩 허가를 기다리는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일단 허가증을 받으면 장사 외에 다른 일은 하지 못한다.


엘렌 바로 옆에 있던 20대 후반의 청년 채소상인은 "그래서 상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한다"면서 "나는 1주일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을 다 돌며 장사한다"고 거든다.


이러다보니 최근에는 허가증 없이 정식 라이키시장에서 떨어진 곳에 좌판을 차려 놓고 저가 의류와 인형 생선 신발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시장의 강점이자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싱싱한 것이 생명인 야채와 과일을 팔기 때문에 낮 12시가 되면 가격이 3분의 1 정도로 뚝 떨어진다.


상인들이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가격을 표기하는 것도 수시로 가격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제 가격에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서둘러 나오는 일이 많다.


통상 라이키시장은 오전 9시께 열려 오후 2시면 파장한다.


엘렌은 "농부인 아버지는 라이키시장에서 일한 지 40년이 넘었다"면서 "까르푸 등 대형 할인판매점이 속속 들어오고 있지만,파는 물건이 다른 데다 우리 농산물이 더 싸고 싱싱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테네(그리스)=문희수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