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신 < 한국선박운용 대표 > 경영학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하게 들었던 말이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였다. 성공한 기업이 자기의 성공에 안주하다 보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창조적 파괴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이 뒤따랐다. 필자의 의문은 '왜 성공한 기업은 자기의 성공에 집착할까?'하는 것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하자.해리슨 포드가 나오는 액션극(이름이 뭐더라?)에 보면 주인공의 길을 막아서는 덩치 큰 악당이 긴 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주인공을 위협한다. 왼쪽은 천길만길 낭떠러지,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바들바들 떠는 여자 주인공(대개 금발미녀이다).이 때 주인공은 씩 웃으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간단히 일발 발사하고 악당은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악당에게는 칼솜씨가 성공의 비법이었고, 시대는 변해 총이 칼을 이기는 때가 왔건만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총 가진 사람 앞에서 칼을 휘두른 것이 악당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세상이 이렇게 액션 영화같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품질관리를 지상의 경영 목표로 삼고 회사를 품질 향상의 길로 매진토록 한 어떤 전자제품 회사는 신기술 개발이라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빈사 상태에 이르게 됐고,강력한 유통망과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던 한 맥주회사는 소비자의 입맛 변화를 읽지 못해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하락하기도 했다. 악당은 왜 칼을 휘둘러야 했고,전자제품회사는 왜 품질관리를 내세워야 했고,어떤 회사는 왜 소비자 입맛 변화를 안 따라가고 유통망에 집착했을까? 이 의문은 실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이 의문을 풀 수 있으면 변화와 혁신은 이미 반 이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이 이 의문에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건강과 부귀영화가 그의 것이 될 것이고, 기업이 이 의문을 풀 수 있다면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기의 머리로 자기의 손으로 찾아낸 해답이 아니고는 실생활에서, 기업의 경영에서 적용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이 쥐어준 해답으로 어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개인의 변화는 개인의 자기 성찰이 맨먼저 있어야 하며,기업의 변화와 혁신은 기업이라는 집단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의 삶이나 기업의 경영 모두 실천의 영역이지 이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2000여년 전에 살았던 맹자가 이 의문에 힌트를 주고 있다. 그는 말한다. "삶이란 근심 속에 존재해 있는 것이며,죽음이란 편하고 즐거운 가운 데에 있는 것이다. (生於憂患, 死於安樂)" 개인의 경우 근심이 있다는 말은 살아 있다는 말이고,편하고 즐거운 날이 지속된다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새겨도 될 터이다. 또 기업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걱정거리가 제기되고 경영자가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회사는 건강한 회사이며,모두 잘된다는 보고만 있고 회사의 장래를 위협하는 요인은 없다는 보고만 올라오는 회사는 이미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보아도 될 터이다. 칼 솜씨로 성공한 사람은 칼의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모르고 있는 한 안락하지만, 이는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성공 체험이라 할 것이고,품질관리로 성공한 기업에는 품질관리에 매진하는 한 안락하기는 하나 회사의 쇠퇴에 이른 무서운 성공 체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고 보면 과거에 어떤 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