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무언가 새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대를 갈까 했지만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해 인간 유전체 기반인 프로테오믹스(단백질유전체학)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지요." 대전 대신고 3학년 김민균군(18)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의 우수한 학업 성적을 내고 있다. 학교측이 서울대 의대 진학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김군은 서울대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로 방향을 틀었다. 김군은 수능시험이 한 달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틈을 내 학내 과학발명 동아리인 '사이빌(Science Village)' 모임방을 찾는다. 이곳에 비치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보면서 과학 트렌드를 살피고 후배들의 발명품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지난 2000년 출범한 사이빌은 대신고 전체 학생의 20%가 넘는 300여명이 가입하고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발명 동아리. 현재 발명 중인 과제만 500개가 넘고 511건의 특허 및 실용신안을 출원해 100여건을 등록시켰다. 사이빌은 전국 규모 발명대회에서 장관급 이상의 상만 16개를 수상했다. 개발품 중에 레이저를 이용한 손가락 마우스와 쓰레기를 무게에 따라 자동 분리해 주는 장치는 전문가들도 놀란 제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 고교의 과학 수업시간에는 실험실습을 충실하게 할 여건이 안 돼 있어요. 묘안을 찾은 게 발명 중심의 과학 동아리 활동이었지요." 사이빌을 지도하고 있는 오기영 교사(34)는 "처음 반을 개설했을 때 동아리 활동이 입시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학부모들의 비난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동아리 출신의 학생 상당수가 학원과외 없이도 명문대로 진학하고 후배도 잘 챙기게 되니까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했다. 실제 사이빌 출신들은 지난해에만 서울대(4) KAIST(4) 연세대(2) 고려대(1) 한양대(1) 서울시립대(1) 등으로 진학했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과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면서 전자공학,바이오 등 이공계통으로 진로를 정했다. 사이빌은 각 팀이 할당받은 연구프로젝트를 스스로 해결토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이를 통해 학생들 자신의 장래에 대한 꿈을 설계토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제품개발 과정을 통해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하면 결과적으로 돈도 번다'는 마인드를 길러 주는 데도 관심을 쏟는다고 오 교사는 소개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이공계를 가지 않고 의대로 가는 이유요? 이공계 가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요? 발명 같은 실증적 모델 교육을 통해 과학으로도 부자가 된다는 인식을 하게 만든다면 학생들이 이공계로 몰려갈 겁니다." 오 교사는 또 과학 교육이 미래 사회는 어떻게 바뀔지,장래에는 어떠한 직업이 유망할지 하는 것을 미리 예측해 학생들에게 제시해야만 이공계를 더 많은 학생이 선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신고처럼 고교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과학 교육을 시행하는 곳은 아주 드문 사례에 속한다. 현실적으로 과학 인프라의 부족,교사들의 성의 부족,입시 위주의 수업 등으로 그야말로 과학교육이 흉내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전 D고교의 한 여교사는 "과학 실험수업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실험해 봐야 점수를 올리는 데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봐 교사나 학생들이 모두 열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또 서울 시내 S고교의 한 교사는 "과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특별 지도했다가 학부모로부터 학생을 차별 대우한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라 아예 시도조차 못한다"고 했다. 권오갑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은 "고교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고 이공계를 지원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일선 고교 과학교사들의 역할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