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고궁에서 철강 재벌들이 술잔치를 벌인다." 국정감사에서 '맹활약'하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이번엔 화살을 지난 4일 창경궁에서 열린 제39차 국제철강협회(IISI) 서울총회 만찬으로 돌려 '철강 재벌들의 창경궁 술잔치'라는 독설을 쏟아냈다. 노 의원의 논리는 이렇다. IISI 서울총회는 "세계 철강업체들의 행사라지만 사실상 포스코 등이 주최하는 사업적 성격이 강한 행사에 불과하다"는 것.결국 창경궁이 "재벌 사장들의 만찬이나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문화재가 권력과 기득권층의 놀이터로 전락했으니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라도 제출해서 막아야겠다"며 칼날을 세웠다. 그러면 그의 주장대로 이 행사가 '철강 재벌들의 술판'에 불과할까. IISI 총회는 매년 회원국을 돌아가며 열리는 대규모 행사다. 서울 총회에도 세계 주요 철강사의 최고경영자와 전문가 600여명이 참석,업계의 현안을 논의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엔 특히 중국의 과잉 설비 해소 문제를 놓고 집중 토론을 벌여 중국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IISI 총회를 주관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자신들의 자랑거리인 고궁에서 만찬을 주최한다. 다른 대규모 국제행사의 관례도 그렇다. 프랑스가 총회를 유치했을 때는 베르사유궁전이 만찬 장소로 제공됐고 오스트리아 총회에서는 쉔브룬궁전이 만찬은 물론 세미나 장소로까지 활용됐다. 노 의원은 "그런 나라의 고궁은 석조건물이지만 우리는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만찬은 애초부터 잔디밭에서 열리게 돼 있었다. 각국이 국제회의에 유적을 개방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자신들의 유산을 세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자랑하고 문화를 뽐내려는 것이다. 회의 일정에 쫓기던 참석자들에게는 잠시 긴장을 풀고 그 나라의 문화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우리가 유치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단순한 비즈니스 모임'으로 폄하하고 만찬 행사를 '술판'으로 깔아뭉개는데 누가 한국에서 국제회의를 열려고 할지,답답할 뿐이다. 김홍열 산업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