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일로 독일이 통일된 지 15주년을 맞는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은 통독 15주년을 기념해 크고 작은 축하행사들을 준비 중이지만 정작 독일 내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 경제 사정이 계속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이 이뤄진 1990년 이후 무려 1조2400억유로(약 1550조원)를 옛 동독지역에 쏟아부었지만 경제상승 효과는커녕 동·서 간 경제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옛 동독지역의 높은 실업률과 생산성에 비해 과다한 복지비용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동독지원으로 통일 독일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유럽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다른 유럽국가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 내에서는 통일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동·서 경제가 균형을 맞추려면 앞으로 15년은 더 걸릴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뒷걸음 치는 경제 지금까지 모두 1조2400억유로에 이르는 통일비용은 거의 옛 동독지역에 투입됐다. 특히 연금지원 등 복지부문에는 절반이 넘는 6300억유로가 쓰여졌다. 나머지는 도로 철도건설 등 인프라 구축(13%),동쪽을 중심으로 한 농업부문(7%) 등에 지원됐다. 그 결과 옛 동독지역의 소득 수준은 서독지역의 83% 정도로 높아졌다. 그러나 동독지역의 1인당 생산액은 서독지역의 64% 수준에 그치고 있어 그 차이만큼 통일비용이 계속 투입되고 있다. 실제 1999년 이후 매년 평균 1000억유로(125조원) 이상이 속속 투입되고 있다. 이 같은 부담으로 독일의 재정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독일의 재정적자는 유럽연합(EU) 협약의 제한범위인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를 넘는 4% 수준에 육박,EU집행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을 위기에 처해있다. EU에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독일의 재정적자가 늘어나면서 분담금 지원 축소 등 유럽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강하다. 독일 정부는 동독지역의 인프라 구축에도 1600억유로를 쏟아부었지만 동독주민들이 서독으로 대거 이주하는 바람에 투자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할 능력을 갖춘 젊은층의 이주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서독의 2배에 달하고 있다. 또 동독지역에는 비어 있는 주택만 100만여 가구에 이른다. ◆소극적인 정치권 지난달 독일 총선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은 동독문제에 대해 가급적 말을 아꼈다. "동독은 기회와 도전의 땅"이란 정치적인 수사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자칫 동독지역 주민들의 감정을 자극했다가는 감표요인으로 작용될 것을 우려해서다. 동·서독 주민 간 상반된 정서는 독일 정치권이 동독 문제를 획기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옛 동독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정부와 서독측의 지원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만 서독 거주 주민들 역시 "동독 주민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이어서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은 상태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