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국무총리실 확대간부회의.이해찬 총리가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국회에서 고위 당정회의를 막 끝내고 오는 길이었다. 잔뜩 독기가 오른 날카로운 얼굴.총리실 간부들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회의 분위기는 냉랭했다고 한다. 고위 당정회의에서 뭔가 큰 사단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이날 고위 당정회의의 안건은 사회안전망 구축 대책.참여정부 제1의 공약 사항을 최종적으로 확정·발표한 회의였다. 오는 2009년까지 예산 8조6000억원을 투입,차상위 빈곤층 지원 등 22개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이 총리가 입을 열었다. "재정경제부는 기획예산처에 구조조정하라고 '핑퐁'하고,재경부는 세금 하나 만들라고 '핑퐁'하면서 6개월을 왔다갔다 했다. 결국 내가 6개월간 놀림을 받은 꼴이다." 8조600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번듯하게 발표해 놨는데 재경부와 예산처가 서로 책임을 미루다 당장 내년에 집행해야 할 사업비 2조8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참고 참고 지금까지 왔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결국 내가 놀림을 당한 것이다." "국가의 중요 합의 사항에 대해 이행을 안 한다면 장관을 해임할 수밖에 없다.내가 해임 건의권을 갖고 있다." "재경부,예산처 1급들은 내가 아주 준엄하게 잡을 것이다.괘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총리를 떠나 국회의원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런 부서들은 그냥 두지 않겠다." 이 총리의 분노는 후속 대책 지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재경부나 예산처에 맡겨두지 말고 국무조정실에서 직접 분석을 해서 자를 건 자르고,넣을 건 넣고 (예산) 구조조정을 하라." "부처에 갖고 오라고 하지 말고 아예 국조실장이 책임지고 구조조정을 해서 예산을 만들어내라." "2010년까지 공무원 월급을 동결할 각오를 갖고 하라." 주무 부처인 재경부와 예산처를 배제시킨 채 자신의 직할 부대인 국무조정실에 일을 맡긴 것이다. 두 부처는 '처벌 받을 곳'이지 후속 대책을 마련할 자격이 없다는 인식의 표출이었다. 이 총리는 "국조실 경제조정관 밑에 아예 팀을 짜서 예산 구조조정을 직접 하라"며 "(재원 마련을 위해) 예산 5%를 못 줄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부처에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이어 "사회안전망 구축은 참여정부가 국민에게 내건 약속"이라며 "이걸 지키지 못하면 그냥 툭하고 발표한 꼴밖에 안 되는데 그러면 정부가 얼마나 불신을 받겠느냐"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구당 소득을 높여나가고 사회보장을 확실하게 해야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경제부처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 총리의 분노를 전해들은 재경부와 예산처 공무원들은 "예산 확보도 안된 상태에서 사회안전망 대책을 너무 서둘러 발표한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추후 예상되는 책임 추궁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