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원 < 메트로뱅크 부지점장 marianneseok@yahoo.com > 검은 머리를 밝게 물들이는 염색은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 필수가 돼 버렸다. 예뻐지기 위한 성형수술도 더 이상 연예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거리를 자신 있게 활보하는 예전보다 훨씬 서구화된 모습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노란 머리,뾰족한 코로 그려진 왕자 공주 이야기책만 보면서 자란다고 생각해 봐.커서도 별 수 있겠어.그런 모습이 최고라고 생각하지.아이들에게 우리 모습이 그려진 우리 책을 보게 해야해.그래야 우리 것을 귀하게 여겨." 한결같이 우리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책을 펴내고 있는 출판사 대표가 오래 전에 한 말이다. 머리 염색이나 성형수술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염색이나 성형 후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면 하고 나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까닭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전통 미인이 아니라 서양 미인이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은 둥글고 작은 얼굴에 좁고 긴 코,약간 통통한 뺨과 작은 입,가느다란 눈썹에 쌍꺼풀이 없는 긴 눈을 가진 여인을 그렸다. 제목은 미인도.머리는 칠흑같이 검다. 그런데 요즘은 크고 쌍꺼풀진 눈,오뚝한 코,개성이 강해 보이는 얼굴을 미인이라고 생각한다. 검은 머리는 어두워 보인다고 싫어한다. 사실 서양 미인도 가치관에 따라 변해왔다. 염세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19세기 말에는 핏기 없는 피부에 야윈 몸매,퀭한 눈,파인 볼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가 서양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서양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있음을 은연 중에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서구의 미모관에 물들어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 한국에 사는 필리핀인들의 축제행사 중 하나인 미스필리핀 선발대회 심사 때였다. 내가 점수를 높이 준 서양 미인형 대신 까무잡잡한 피부에 통통하고 아담한 몸매를 가진 후보가 1등으로 뽑혔다. 필리핀 출신 심사위원들은 자기 나라 미인형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지위가 올라가면 아마도 지금보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질 것이다. 성형수술과 머리 염색으로 유전인자까지 바꿀 수는 없는 법.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날 다음 세대 사이에 눈을 크게 보이려는 화장법 대신 가늘고 길게 보이기 위한 방법이 유행하는 날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