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서류 발급 서비스를 비롯한 전자정부 보안 시스템에서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 대법원 국세청 등은 전자정부 발급 서비스를 중단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전자정부 프로젝트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정부가 최저가 낙찰제를 고집한 데서 비롯했다는 지적이다. 헐값에 수주한 프로젝트에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사용할 리 없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얘기다. "공공부문 프로젝트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많이 따낼수록 손실이 커진다." 시스템 통합(SI) 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이 정설로 통한다. 정부가 책정한 예정가 자체가 낮은 데다 업체 간 과당 경쟁으로 헐값에 수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SI 업체들은 경험을 쌓기 위해 정부가 입찰을 부칠 때마다 출혈경쟁을 일삼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행정자치부 민원서류 발급이나 대법원 등기부등본 발급 서비스 외에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온 각종 전자정부 프로젝트는 대부분 최저가 입찰에 부쳐져 예산보다 훨씬 적은 가격에 발주되곤 했다. 낙찰가가 예정가의 50%를 밑돌기도 했다. 참여정부 들어 최저가 입찰제를 개선하긴 했지만 낙찰가가 예정가를 20% 이상 밑도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전자정부 프로젝트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국민의 정부 때나 지금이나 가격 싸움에 의해 사업자를 선정한다. 응찰 업체들이 받은 기술점수를 중시하는 발주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점수의 비중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기술이 일정 수준에 달한 입찰 업체들을 대상으로 가격 싸움을 붙여 사업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SI업체들은 출혈경쟁으로 내몰린다. 경험을 쌓기 위해 반드시 따내야 하는 프로젝트다 싶으면 1원을 써내는 사례도 수차례 있었다. 지난해 한 업체는 고속도로 자동요금 징수시스템 사업의 주파수(RF) 부문 입찰에서 입찰가로 1원을 써내 파문을 일으켰다. 덤핑 수주는 덤핑 하도급을 부채질한다. SI업체는 헐값에 프로젝트를 따낸 뒤 하청업체에 헐값에 떠넘긴다. 솔루션이나 장비를 공급하는 하청업체들은 '하늘' 같은 SI업체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사업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를 거부할 수 없다. 최근 공공 프로젝트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다툰 일이 생겼으나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하청업체가 적자를 내더라도 원청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춰야 한다. 그러니 적자를 줄이기 위해 줄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될 리 없다. 업계 관계자는 "낮춰진 가격에 맞추기 위해 원래 계획한 것보다 질이 떨어지는 장비를 쓰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발주처 공무원은 감사에서 적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낙찰가를 최대한 끌어내려야 한다. SI업계는 무엇보다 정부가 소프트웨어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전 사장은 지난해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