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석자 명단 ] 박병원 재경부 차관 김기문 로만손 사장 고일동 KDI연구위원 고유환 동국대 교수 사회 이봉구 본사 논설위원 -------------------------------------------------------------- 정부와 기업,학계 전문가들은 6자회담 타결을 통해 남북한 간 경제 협력의 새 돌파구가 열렸으며,궁극적으로는 일본과 남북한 중국 러시아를 잇는 동북아 경제협력벨트가 조성될 토대가 마련됐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20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를 통해 "이번 공동성명 합의가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합의되지 않은 만큼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고 진단했다. 이봉구 한경 논설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김기문 로만손 사장(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회장),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6자회담 타결로 한반도에 정치·군사적 안정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새 돌파구 마련이 기대된다. ◆고유환 교수=이번 합의는 지난 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대체할 만큼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막판 고비였던 경수로 제공문제를 적당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합의해 파국을 막았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국이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침략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도 큰 성과다.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불가침을 확약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기문 사장=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군수물자 이동을 제한하는 '바세나르 협약'으로 인해 기계류 등 필요 물자를 북한으로 들여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문제로 인해 통행이 제한된 것도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이번 합의로 이런 숙제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일동 위원=6자회담 합의가 지연됐을 경우 한국의 입장이 가장 난처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거 북한과 미국 양자 간 협의에서 다자 간 협의로 바뀐 점도 긍정적이다. 경수로 문제 등이 미뤄졌지만 협의 당사자가 예전보다 늘어난 만큼 북한이 함부로 약속을 파기하긴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 ◆박병원 차관=북한은 아직 군부의 지배력이 강한 소위 '선군 정치'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 합의를 통해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까지 포기하기로 한 것은 군부의 입장이 유연해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이라크전 이후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던 게 사실이다. 미국의 불가침 약속은 북한과의 경협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사회=핵 폐기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한다는 구체적인 스케줄은 빠져 있다. 이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데. ◆고 교수=이번 합의는 큰 틀에서 원칙과 방향만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어려운 문제는 뒤로 돌려놓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뜨거운 감자'인 경수로 문제와 북한의 NPT 복귀 시점,사찰 시점 등은 아직 안개 속이다. 북한이 NPT 가입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경수로 건설과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의 에너지 지원문제 등도 지원 용의만 밝혔지 구체적인 분담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박 차관=북한이 계속 대화할 용의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하나씩 구체화될 것이다. 경수로는 명분이라는 면에서 북측에 중요하겠지만 이를 건설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북한 경제가 그걸 기다릴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경수로 문제는 시간을 두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고 위원=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갖고 시작하기보다 현 상태에서 타결이 가능한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사회=북한과 미국으로부터 경수로 문제를 놓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 교수=과거 제네바합의는 북·미 간 양자합의였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 돌려 파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나머지 국가들이 이행을 강제하거나 후원할 수 있는 협의체가 갖춰져 있다. 중요한 건 북한의 발상 전환이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박 차관=북한의 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은 몇 달 안 걸리는 문제다. 반면 경수로는 실제로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제공될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동시 착수는 가능해도 동시 이행은 불가능한 사항이다. 북한도 그걸 알고 있다. 북한이 이번 공동성명 문안에 동의해 준 것은 그런 점을 감안해 유연성을 보인 것이다. ◆사회=이번 합의에는 에너지 등에서 양자와 다자 간 경제적 협력을 증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북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북한에 대한 에너지 공급 약속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을 잘 살게 만드는 게 시급한데 이를 위해선 경제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관련국들이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합의가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발표된 것도 기업들의 북한 투자를 촉진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고 교수=이번 합의가 구체적으로 이행된다면 한국 경제의 큰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유동 자금을 펀드화해서 북한 경제 재건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더 좋겠지만 투자 위험 때문에 대거 유입되긴 어려울 것이다. 반면 남측 기업 입장에서는 북한이 상당한 투자매력을 지닌 지역이다. 그동안 냉전시대로 잠재돼 있던 새로운 성장축이 생길 수도 있다. 일본에서 남북한을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경제협력벨트가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이번 합의는 남북 경제협력에 어떤 구체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박 차관=남북경협의 질적 도약을 위해선 세 가지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우선 통행 및 통관문제 개선이 필요하다. 북한이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해도 지금과 같은 형식으론 어렵다. 이 문제는 북한 군부가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풀 수 있다. 이번 합의는 북한 군부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는 에너지 문제다. 부족한 에너지를 해결하지 않고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세 번째는 전략물자와 관련된 규제다. 이번 합의는 이 같은 세 가지 선결과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 위원=이번 합의로 한국 경제가 당장 남북경협을 통한 폭발적인 성장동력을 얻게 될 것이란 기대는 지나친 것이다. 북한 경제는 남한의 30분의 1도 안 된다. 이렇게 작은 경제규모로는 커다란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 신인도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낙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인도를 따질 때 고려하는 지정학적 불안요소에는 이미 전쟁 등 파국적인 상황은 배제돼 있다. 오히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서 남쪽 재정에 너무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지도 모른다. ◆박 차관=북한의 도로 항만 통신 등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에 남북경협은 어느 정도 한국의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앞으로 남북경협은 재정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경협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북한의 토지는 모두 국유다. 공장을 짓거나 리조트를 건설하려고 할 때 토지가격 인상 등의 걱정이 없다. 토지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얘기다. 값싼 노동력도 북한의 장점이다. ◆김 사장=북한 당국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지원이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부는 향후 남북경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개성공단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게 기업들이 느끼는 장애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줬으면 좋겠다. 정리=안재석.장경영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