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 < 한양대 교수·경영학 > 창업 관련 규제완화가 지속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번거로운 절차로 인해 창업비용이 상당히 유발되고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식회사 설립과 관련한 서류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해 개선됐지만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현실에 부적합한 요소들이 잔재해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상법에 의한 최저자본금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설법인의 90% 이상이 위장납입을 하고 있어서,법 취지인 주식회사의 채권자보호와 신뢰성 확보에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실제 관행과 거리가 먼 최저자본금제도를 폐기하거나 현실에 맞게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주식회사법의 취지에 맞게 오히려 엄격하게 법집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밝혀내고 처벌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또 다른 비용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대다수의 기업들이 설립단계부터 불법이나 편법에 의존하고 있는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창업단계에서 자본금을 위장납입하는 관행은 법질서에 대한 경시풍조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회계불투명성의 원인이 된다. 처음부터 탈법이나 변칙에 의존하게 되면 기업가로서 올바른 태도와 정신을 갖추기 어렵다. 창업초기부터 회계의 불투명 관행이 만연하다 보니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매우 낮다. 이런 관행은 신용 대출을 기피하게 해 자금조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은행은 부실대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신생기업에 대해선 담보대출이나 보증대출에 의존한다. 은행은 이 같은 관행을 기업 회계정보의 불투명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서도 현실에 부적합한 제도는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최저자본금제도를 없애거나 완화하면 주식회사가 난립하고 유령회사나 가공회사 설립을 제재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유령회사나 가공회사를 설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현행 최저자본금제도가 전혀 통제 수단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관행으로는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자본으로 법인 설립을 하도록 하고 증자나 융자를 통해 자금조달을 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자본금이 충실하지 않으면 증자나 융자에도 불리하기 때문에 기업가 스스로 자본의 충실화를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시장원리가 작동되게 해야 한다. 이런 설립방식의 불이익이 없도록 하려면 증자금액에 대해 등록세나 교육세를 부과하는 것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창업생태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 같은 제도적 절차 개선도 필요하지만,기업가의 자세와 의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은 개인차원의 영리목적에서 설립되지만 법인격을 갖추는 순간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형성된다. 자유기업주의에 의해 기업의 설립은 가급적 자유롭게 해야 하지만,주식회사의 대표는 법인으로서 법률행위를 하기 때문에 사적 기관이면서도 상당부분 공적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최저자본금제도 폐지나 완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기업가의 도덕성이나 윤리의식에 대한 사회적 불신감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창업교육 전문가나 컨설턴트부터 기업가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태도 형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올바르게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제도개선과 병행해 기업가의 의식수준이 향상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창업생태계의 선진화가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