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제유가와 최근 몇 년 새 크게 낮아진 원화 환율은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한껏 떨어뜨리고 있다.


내수 경기는 언제 회복세로 돌아설지 아득하기만 하고,마지막 보루였던 수출마저 중국의 저가 공세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여건이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앞을 향해 달린다.


비결은 혁신을 통한 원가 경쟁력 강화.기발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경영혁신 기법을 동원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주요 기업의 현장을 찾아본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지난 15일 LG화학 울산공장 사원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자 식당 직원들의 환한 미소와 우렁찬 목소리가 시장기를 자극한다.


고급 레스토랑의 손님 응대법과 다를 게 없다.


배식대에는 반찬이 떨어지면 누르라고 버튼이 설치돼있고 수저는 음식을 뜨는 중에 떨어뜨릴까봐 배식대 끝에 비치해놨다.


빨간 모자를 쓴 '홀(hall) 도우미'가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닦고 김치그릇을 채워준다.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는 자율 배식이지만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다지 유쾌할 것 같지 않은 공장 내 사원 식당.LG화학 울산공장 식당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는 평범한 구내식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기업들로부터 벤치마킹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지난 2003년 이 공장 총무팀이 식당 운영 개선을 위한 6시그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사원 식당 운영에도 6시그마를 도입할 수 있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낸 주인공은 백경열 총무팀 대리.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만족도는 낮았고 남는 음식 때문에 매년 수억원씩 손실이 발생해 골머리를 앓던 터였다.


백 대리는 김태용 과장,변치수 대리 등과 함께 팀을 꾸렸고 '대장금팀'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우선 남는 음식을 줄이는 게 급선무였다.


잔식(배식하지 않고 남은 음식)과 잔반(손님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합쳐 하루에 312kg씩 음식이 남아 일년에 2억6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다.


잔식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매일 바뀌는 한식(A메뉴)과 분식(B메뉴) 중 어떤 음식을 많이 먹을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어려웠기 때문.경험이나 감에 의존해 식자재를 구입해 왔던 탓이다.


대장금팀은 미리 메뉴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해봤지만 응답률이 낮아 실패했다.


난관에 봉착한 대장금팀.이번에는 '한 번 먹은 메뉴는 또 먹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봤다.


된장찌개와 돈가스가 함께 나왔을 때 한번 된장찌개를 고른 사람은 다음에도 된장찌개를 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분석 결과 사람마다 메뉴 선택에 일관성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된장찌개-돈가스,설렁탕-자장면과 같은 30가지 메뉴 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용률 분석을 거쳐 잔식을 90%나 줄일 수 있었다.


다음은 잔반.자율 배식이었던 배식 방법을 식당 직원이 적당히 덜어주는 대면 배식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사람이 더 필요했다.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손님들이 음식을 조금 덜게끔 식기의 모양과 크기를 바꾸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완만한 라운드형이었던 그릇 모양을 둥근 원통형으로 바꾸고 고객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 만큼(23%) 크기를 줄였다.


이를 통해 잔반을 80% 이상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대장금팀은 잔반과 잔식의 양을 줄여 연간 1억7000만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다음 과제는 맛과 서비스 개선.우선 조리기술을 향상하기로 했다.


식당 운영을 맡고 있는 외식업체 '아워홈'의 표준 조리법(Recipe)이 있었지만 공장 직원들의 80% 이상이 경상도 출신인 만큼 경상도 입맛에 맛게 조리법을 개선하기로 했다.


설문조사를 거쳐 40개의 메뉴를 확정하고 시식회를 통해 맛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표준조리법도 만들었다.


대장금팀은 이 조리법을 '특선메뉴 40선 조리비법 공개'라는 책으로 엮어 직원 가정에도 배포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맛 외에도 음식의 품절 및 식당 청결 문제,배식 시 대기장소 혼잡,퇴식구 혼잡 등에 대해 가장 불만이 많았다.


품절과 청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정실에서 일하던 6명의 인원 중 한명을 홀에 배치했다.


홀도우미라는 이 역할은 김치가 떨어지면 채워주고 더러워진 식당 내부를 청소하는 것.약간의 발상 전환으로 식당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대장금팀은 이 같은 혁신활동의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LG화학의 6시그마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직접 생산활동이 아닌 사무간접부문(TQ)에서는 최초로 받은 대상이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