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간 35년만에 다시 나오는 것이니 늦어도 많이 늦었다고 할 수 있죠.'사상계'를 방향감을 잃고 방황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잡지로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고(故) 장준하 선생에 의해 1953년 창간됐다가 70년 폐간된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계'가 인터넷에서 'e-사상계'(www.esasangge.com)라는 이름으로 다음달 10일 선보인다.12월호부터는 종이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e-사상계의 대표이사 겸 발행인으로 복간 1호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57)씨는 "올해는 장선생님(장씨는 아버지를 장선생님으로 호칭했다)이 돌아가신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사망당시 장선생님의 나이가 공교롭게도 제 나이와 같기도 하다"며 "이번 '사상계'복간은 장선생님이 저의 몸을 빌어 생전에 못다했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장준하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그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장준하 선생이 타계한 이듬해 76년 4월19일 정보기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집근처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


폭행 끝에 기절한 그는 동네병원에 실려갔지만 병원에서는 상태가 심각하니 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결국 경희의료원으로 옮겨 3개월이나 입원해야 했다.


그때 턱뼈가 모두 부러져 백금을 턱속에 박아 넣었다.


장씨는 "지금도 공항검색이 철저한 곳을 통과할 때는 입속의 백금 때문에 탐지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후에도 직장을 잡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먹을 쌀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그를 안쓰럽게 여기던 모 인사가 쌀가마를 집안쪽으로 넘겨준 뒤 당시 김종필 총리에게 불려가 '당신도 유신에 반대하느냐'며 혼쭐이 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가족들을 남겨둔 채 79년 무일푼으로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공사현장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82년 일시 귀국했지만 이번에도 기관원들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서초동의 한 지하실로 끌려간 그는 대학생이나 민주화 인사 중 잠적한 사람의 행적을 대라는 신문을 받았다.


이후 장씨는 다시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한 교민의 소개로 금융컨설팅을 하면서 조금씩 생활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지난 2003년 영구 귀국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집 한칸 없다는 장씨는 "외국생활하면서 얼마간의 돈을 모았지만 당분간은 '사상계' 복간에 전력 투구할 계획"이라며 "재물이나 집에 욕심이 없었던 아버지처럼 저도 이쪽에는 큰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사상계'가 발간됐던 50~60년대와 지금은 시대는 많이 바뀌었지만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보다 훨씬 다원화된 오늘날 사회가 사회구성원 간 분열양상도 더 심하고요.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바른 길(正道)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는 "진보와 보수의 잣대에서 벗어나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사상계'의 최우선 가치로 삼을 계획"이라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 잡지와 달리 철저히 정론(正論)만을 추구하며 광고도 공익광고만 실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