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우량 기업으로 손꼽히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지난 2003년 여름 앞서거니 뒷서거니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로 날아갔다.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에서 바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 오마하까지 간 이유는 스톡옵션제 운용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35달러짜리 T본 스테이크와 버핏이 즐긴다는 체리향 코카콜라를 맛보고 본사로 돌아온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스톡옵션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형태의 성과보상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워런 버핏의 충고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함께 세계 경제계에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버핏은 한마디로 스톡옵션을 죄악시하고 있다. 스톡옵션이 경영자의 탐욕을 자극해 회계조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버핏의 생각이 완전히 대세를 장악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인재 채용과 관리를 위해 스톡옵션제의 효용을 옹호하고 있다. 또 이들 기업 중의 상당 수는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미국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는 기업들의 과도한 스톡옵션이 경영투명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난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토록 하는 새로운 회계기준을 마련했지만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찬반이 워낙 극명하게 갈려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코시스템즈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은 "능력있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스톡옵션이 꼭 필요하다"며 "스톡옵션을 비용처리하면 주요 기업들은 손익에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고 미국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련 법규는 미국과 달리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토록 규정하고 있어 비용문제에 대한 논란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대선주자들까지 나서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는 비용처리에 찬성을,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는 반대하는 입장을 각각 나타냈다. 시스코의 최고경영자(CEO) 존 체임버스가 부시를 공개 지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세는 스톡옵션 손질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처리에 대한 압력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때 비용처리를 강력하게 반대했던 인텔과 IBM이 지난해 '찬성'쪽으로 선회한데 이어 과다한 스톡옵션을 규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 또한 강하기 때문이다. 경영진과 종업원 간 급여 격차가 너무 벌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965년 미국 평균 근로자 봉급의 20배에 불과했던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스톡옵션제가 속속 도입되면서 1997년 119배에 이어 1999년엔 무려 1000배까지 늘어났다. 일본이 자랑하는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경영자에게 거액의 보수나 막대한 스톡옵션을 주는 게 상식처럼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영자에겐 동기부여가 될지 모르지만 종업원들에게 심각한 소외감을 심어줍니다. 또한 거액의 스톡옵션은 경영자 자신을 타락시킵니다. 스톡옵션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해도 경영자를 마약처럼 갉아먹을 것입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