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인 열린우리당의 차기 대권 후보 중 한 분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주일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경제는 일본이 한국보다 앞설지 몰라도,적어도 정치만큼은 한국이 일본보다 선진국"이라고 자신했다. 일본은 정권 교체를 50년 이상 못해 장기 집권 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우리나라는 민주화 운동 성과로 여야간 정권 교체가 성사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또 일본인들은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1일 예정된 일본 총선도 현재대로라면 집권 자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 이번에도 정권 교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권 후보 설명대로라면 일본인들은 이번에도 정치 선진화에 실패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헌법에 정해진 대통령의 임기마저 흔들리는 혼란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면 일본인에게 한국의 정치수준이 높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선거 운동을 지켜보면서 정치 수준이 선진국에 도달했다는 점을 평가해줄 부분이 꽤 있다. 자민당과 제1야당 민주당은 물론 자민당에서 탈당해 신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나온 사람들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국체'를 뒤흔들거나 상대 후보를 인신 공격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다. 지난주 진행됐던 TV 당수 토론이나 후보 유세에서도 주된 의제는 '21세기 일본의 좌표'였다.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초점이었다. 여당 후보들은 우정 민영화가 최우선 순위라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연금문제와 재정 건전화가 더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보고 선택한 결정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정치'는 사회 계층간 갈등을 줄여주고,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