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텔비사 에어컨 180유로(약 23만원),LG전자 에어컨 950유로(약 120만원)…. '지난 1일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전자 전문매장 '미디어 마트'.1만여평의 매장 한 편에 낯선 이름의 중국산 에어컨이 LG전자 제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다. "성능이나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값이 싼 덕분에 손님들이 꽤 찾습니다." 매장 매니저인 마르티네즈씨는 "중국에서 주문 제작한 미디어마트의 자체 브랜드여서 같은 용량인 데도 가격은 LG전자의 20%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의 마지막 보루인 전자와 자동차 시장마저 갉아먹을 것이란 우려가 하나 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제품보다 절반 이상 낮은 가격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것.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업체들은 '중국발(發) 저가 공습'을 피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장이 겹친다는 점에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저가 해외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전자제품 가격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스페인에서 판매되는 하이얼 분리형 에어컨의 판매가격은 299유로로 동급 한국산 제품(800~950유로)의 30% 수준이다. 퍼스트라인 텔비사 등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 제품은 채 200유로를 넘지 않는다. LG전자 관계자는 "200유로면 국산 에어컨에 들어가는 콤프레서 가격 수준"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네덜란드에 진출한 장링모터스는 동급인 현대차 싼타페(3만유로)보다 40% 이상 저렴한 1만7000유로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랜드윈드'를 내놓았다. 중동의 시리아에선 중국 체리자동차의 1만3000달러짜리 준중형 자동차가 현대 베르나(1만5300달러)와 비슷한 월 150여대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베이징천바오신문은 최근 "수출 가격이 대당 1000달러짜리인 승용차도 있다"고 전했다. ◆저가 경쟁에 국내 업체 비상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는 국내 업체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장점유율 하락은 물론 채산성 악화의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보컴퓨터를 비롯한 PC 업계는 이미 '중국 공습'에 침몰한 상태.가전 역시 중국 업체들이 전자레인지 등 소형 제품에서부터 냉장고 에어컨 등 대형 제품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한국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스페인의 분리형 에어컨 시장의 경우 중국산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중국 자동차업체들도 저가 공세를 본격화하며 올 상반기 수출액(90억5800만달러)을 작년 동기보다 57.2%나 늘렸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주력기간산업실장은 "중국 업체들이 잇단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른 속도로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는 만큼 조만간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한국 업체에 도전장을 내밀 전망"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프리미엄 업체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이지 않으면 중국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스페인 마드리드)·오상헌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