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들 다수가 불량품"이라는 것이다. "라디오를 한 대 사도 불량품은 바꿀 수 있지만 사람 불량품은 바꾸지도 못하기에,기업 차원의 비용 부담은 물론이요 국가적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 대학은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이다. 교수들의 연구비 유용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부정과 비리의 온상인 듯 비쳐지기도 하고,법학 및 의학 전문대학원 설립을 위시한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가 하면,무엇보다 '청년실업'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대학별 취업률을 공표하겠다고 하여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한국의 대학은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 개발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비판과 더불어,대학의 경쟁력은 서울대가 가까스로 세계 90위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 나머지 대학은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비난도 이젠 귀에 익숙하다. 언젠가 우리나라는 교육 관련 갈등만 해소된다면 사회문제의 절반 이상이 해결되리라 보는 교육 전문가의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각종 교육 문제가 난맥상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사교육비 부담이든 학력 저하든 학벌주의든 대부분의 문제를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제도에 귀인시킴에 따라,대학은 모든 교육문제의 최종 기착지이자 모든 사회문제의 발원지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급변하는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대적으로 초연함과 의연함을 견지해왔던 대학의 입장에서,깊은 반성과 철저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대학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학 자체의 몸부림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최근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고시 열풍이나,학부제 하에서 기초학문의 고사(枯死) 현상은 이의 대표적 예 아니던가.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공부하느라 절대 시간이 부족하니 교수님들은 숙제를 조금만 내 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신입사원 모집 시 대학별, 전공별, 성적순으로 1차 스크리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학생들은, 학력을 세탁하고 전공을 포장하며 성적을 최대한으로 올리는 데 온갖 기지를 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 요구에 따라 교무행정에 등장한 장치가 바로 재수강 및 학점포기제다. 고객(학생) 중심의 서비스를 표방하는 재수강 및 학점포기제 운영방식은 대학별로 다양하긴 하나,일부 대학에선 무제한 학점 포기제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 제도가 학생들을 '학점의 노예'로 만들어가는 동시에,대학교육의 기형적 운영 및 질 저하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은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은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상생의 전략이라면,이제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인재를 정확히 선택하기 위한 정교한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만일 성실성,책임 의식,문제해결 능력,팀을 위한 성숙한 인성, 창의력, 풍부한 경험 등이 요구된다면 이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듯 실력순도 아니지만 굳이 성적을 고려할 요량이면 평균 평점보단 전공 및 교양과목 선택의 비중이나 성적의 상승곡선 여부를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란 생각이다. 대학도 취업을 위한 정류장으로 인식되거나 불량품 생산지란 오명이 결코 달가울 수 없다. 게다가 기업의 요구를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기업이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는데 보다 긍정적 역할과 적극적 기능을 담당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