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종로는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거리다. 50대 이상은 땡땡 거리며 다니던 전차와 신신ㆍ화신백화점,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잊지 못한다. 종로엔 또 종로서적과 동화서적 삼일서적 양우당같은 서점과 극장이 몰려 있었다. 강남이 지금처럼 번성하기 전 종로는 젊음의 거리이자 문화의 숲이었다. 특히 서점은 연령에 관계없는 약속장소였다. 종로서적 앞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그러나 강남이 개발되고 종로통 고등학교는 물론 학원까지 옮겨간데다 대학가 주변에 신흥 저잣거리가 생긴 영향이었을까. 90년대 들어 종로는 문화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서점 역시 하나 둘 문을 닫더니 종로서적까지 셔터를 내렸다. 그런 이곳에 반디앤루니스 종로점(종로타워 지하)이 생기면서 주변의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잇는 새로운 서점벨트가 형성됐다는 소식이다. 반디앤루니스가 휴식형 서점을 지향,서가 곳곳에 의자를 마련한 게 호응을 얻으면서 종로통 서점 신삼국지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서점이 일반화된 지금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하는 시내 한복판 서점이 경쟁력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책을 읽도록 해주는 것도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일찍이 테이블과 의자를 장만했던 삼성빌딩 지하 서점과 일산 정글북의 경우 공들인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규모를 축소했다. 그러나 서점은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문화공간이다. 서점 안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맛보기 힘든 푸근함과 설렘이 있다. 서가 가득 꽂힌 온갖 종류의 책을 들춰보고 때로 서가 사이에 주저앉아 책을 읽는 여유는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앞에서 뒷장까지 대각선으로 훑어보는 즐거움,무심코 넘긴 책장에서 마음에 꼭 드는 대목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인터넷쇼핑에선 느낄 수 없다. 아침 저녁 종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진다는 뜻에서 운종가(雲從街)로 불렸던 종로통 서점에 더 많은 의자가 생기도록 독서인구가 늘고 책 판매 또한 급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