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아스트라제네카 이경철입니다." 언제나 신입사원처럼 반듯하게 인사하는 이 남자,이경철씨(29). 약대를 나와 약학대학원까지 마친 재원이지만 하루종일 병원에서 병원으로,의사들을 만나 치료약을 설명하며 다리품 파는 것이 일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영업사원이기 때문이다. 2004년 2월에 입사했으니 요령이 생길 법한 2년차임에도 옷매무새며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단정함이 묻어난다. 학생 시절부터 '에이스'였다니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이렇게 고달픈 일은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약사면허가 있으니 약국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제약회사,그것도 임상이 아닌 영업직을 택했느냐고 물었다. "약국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의 야무진 답변이 이어진다. "약사가 되면 약을 제조하는 일이야 잘하겠지만,제약업계 전반을 보는 큰 시야를 가질 수 없잖아요." 영업직을 택한 이유도 마찬가지. 업계 현황과 수요를 제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연구원이 될까,교수가 될까 고민했던 지난날에 대해 미련이 없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연구를 계속하려고 생각했었죠.하지만 국내 연구환경은 너무나 척박했습니다.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던데요." 이씨가 설명하는 국내 제약업계 현실은 이렇다. 의약품시장 규모는 세계 11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대부분 진출해 있지만 한국에 제대로 된 연구소를 운영하는 회사는 없다. 이웃 일본에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의 현지 연구소가 즐비하고 인도에도 진출해 있는데 비해 한국은 그만큼 제약 연구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이씨는 외국의 제약연구소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제약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세계적 규모의 제약회사 연구소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이 제 목표죠." 그는 자신이 가는 길이 다소 돌아가는 것이지만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제약회사 영업직 하면 소매점인 약국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병원을 돌며 의사들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아예 약국에는 납품을 하지 않는 회사도 적잖다. 바쁜 의사들을 붙잡고 새 의약품에 대해 설명하다보면 더러 짜증 섞인 반응도 듣게 마련. "일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올 때면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그래도 이씨는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웃는다. "하도 많이 다니다보니 나중엔 병원 위치로 지리를 파악하게 돼요. 연세대 입구보다는 세브란스병원이,대학로보다는 서울대병원이 친숙하죠." 회사에서도 '에이스'로 통한다는 이씨가 귀띔해주는 제약회사 입사 비결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미션 스테이트먼트)에 대해 숙지하는 것. 예컨대 면접관이 '담당 의사가 작은 성의(뇌물)를 요구하는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어중간한 대답은 금물이다. 지원한 회사가 도덕성을 중요시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하겠다'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 다국적 제약사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마케팅 컴퍼니'로 분류될 만큼 영업 비중이 높다. 영업직과 비영업직 비율이 7 대 3에 이를 정도. 약학 비전공자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도 대부분 영업직이다. 주로 수시채용으로 인재를 충원하는 업계 특성상 취업시즌 이전이라도 미리미리 자신의 이력서·소개서 등을 제출해 두는 것이 좋다. 면접의 비중이 높은 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 영어 중요한가:토익점수보다는 실제 의사소통 능력이 더 중요하다. 취업할 때뿐 아니라 향후 회사 일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어회화 능력을 갖추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면접시 영어인터뷰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기소개 등은 기본으로 연습해 둘 것.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따로 영어능력 평가시험을 본다. ▶ 배경 지식은:영업직 최고의 비결은 '자신이 담당한 물건을 잘 알고 자부심을 가지고 파는 것'이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의 대표적 제품 특징,시장상황,수요 등에 대해 미리 분석해 두는 것이 좋다. 전공자의 경우 학점이 다소 낮더라도 기죽지 말고 문을 두드려 보자. 전문 지식이 많이 요구되는 만큼 회사마다 내부 교육프로그램을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입사 후에도 '업데이트'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정기적으로 평가시험을 보고 성과에 반영하는 회사도 있다. ▶ 연봉은: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대체로 금융권과 비슷하다는 평가다. 영업직은 성과에 따라 급여·해외여행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약사 면허 소지자의 경우 채용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만 따로 수당을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