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長期)와 단기(短期)처럼 편리한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청와대는 지난 2년반에 대한 자체 평가에서 참여정부 정책은 '장기와 단기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란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정부가 장기과제를 강조하는 등 미래지향적으로 정책을 이끌다보니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은 왜일까. 청와대는 참여정부의 이런 정책적 지향성을 국제평가기관들은 인정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 예로 든 것을 보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과학경쟁력이 지난해 19위에서 15위로, 기술경쟁력은 지난해 8위에서 2위로 상승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IMD 평가가 들쭉날쭉한 것은 둘째치고 그것이 신뢰할 만하다고 해도 참여정부의 공(功)으로 돌리기에는 무리다. 대표적인 장기과제인 과학기술의 성과는 전(前) 정권 혹은 그 전전(前前) 정권에서부터 축적된 것에 조금 더 보태진 결과라고 보는 게 상식이다. 다음 정권은 걱정할 게 없다며 장기성을 강조하는 청와대가 정작 그 성과를 단기간에 찾으려 하는 것은 어색하기만 하다. 경기회복이 지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청와대는 단기적으로 무리한 정책을 사용하면 회복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그렇다고 말한다. '단기=무리한 정책, 장기=근본정책'이란 사고다. 하지만 규제완화 등 단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합당한 정책도 얼마든지 있고 보면 국민들 눈엔 단기 실패를 장기를 이용해 덮으려 하는 것으로 밖엔 안보인다. 모든 것을 장·단기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려고 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단기 없는 장기 없다'는 말이 있다. 투자가 그렇다. 투자가 위축되면 단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이 약화된다. 단기도 장기도 망치는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기업들이 수익모델을 발견할 때까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 수도권 규제로 인한 기업들의 투자지연 문제에 대해선 장기와 단기의 균형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말한다. 장기적인 국가균형발전 과제를 중시하면서 단기적으로 개별적 심사를 통해 그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투자부진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나 한가한 소리로만 들린다. 한편, 우리 경제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제는 정말 장기적인 접근에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하나 실천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과제도 있다. 에너지 정책이 그렇다. 국제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정부가 내미는 단기대책에 불만이 터져나오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장기대책이 장기대책으로만 머물러 왔다는 사실이다. 이제 에너지 정책은 장기가 앞으로, 단기가 뒤로 가는 식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장기과제가 많은 참여정부가 여기에 우선순위를 둘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장기와 단기의 균형같은 추상적인 얘기는 그만했으면 싶다. 경우에 따라 단기처방이 긴요할 수도 있고, 단기·장기 구분없이 역점을 둬야 할 것도 있다. 또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지 않으면 안될 과제도 있다. 실질적인 내용을 따져 접근할 일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