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 <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 노사가 함께 하기,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하기와 같은 상생(相生) 또는 윈윈(win-win)이라는 단어만큼 지금 우리 가슴에 와 닿는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협력이나 상생은 우리가 머리속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단어는 같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그 단어를 통해 각자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대학과 기업간의 협력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기업연구소(산ㆍ학ㆍ연) 모두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산ㆍ학협력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성과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 졸업 후 산업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인력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길러내는 인재란 현장 적응력 외에도 20년, 30년 후의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라는 대학의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기업은 당면한 현장애로 기술의 해결을 대학이나 연구소에 요구하지만, 대학은 현장기술은 오히려 기업 연구소에 맡기고 자신들은 기초연구를 통해 보다 심오한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인류복지에 기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의 여러 여건 변화가 대학과 기업 모두에 산ㆍ학협력의 필요성을 강요하고 있고,성공사례도 더러 나타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산ㆍ학협력중심대학사업을 비롯해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을 기업수요에 맞게 개편한다든가,기업과 함께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늘어가고 있다. 산업계의 CEO들이 대학에서 강좌를 맡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통해 학점을 취득하고 있다. 대덕이나 시화지구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클러스터도 형성돼 가고 있다. 문제는 산ㆍ학협력의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에는 정부 기업 대학 등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함은 물론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만 대학과 기업 간의 관계에서 본다면 대학이 지금보다는 더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없거나 추진주체를 통일시키기가 쉽지 않으며 지역혁신이나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지방대학의 선도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공급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수요지향적인 교육 과정을 더 개발하는 일,학부의 교과과정을 다양화하고 융합형의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일,교수 채용시 산업체 경력을 우대한다거나 교수 평가방식에 있어서 산ㆍ학협력 실적을 반영하는 일,교수 연구년제를 이용해 국내 산업체나 연구소에서 현장연구를 통해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을 지원하게 하는 일 등이 모두 대학이 할 일이다. 그 위에 기업과 대학의 만남을 중개하고,협력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 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나 자산을 보다 쉽게 산ㆍ학협력에 출연할 수 있게 하는 일,연구개발 참여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일,산ㆍ학협력 기술지주회사의 설립을 돕는 일,공동실험실의 구축이나 참여인력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같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이다. 또 성공사례를 전파해 잠자고 있는 기관들을 자극하는 일,후발 참여자들에게 산ㆍ학협력의 기법을 가르치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다른 나라의 성공사례를 막연히 부러워만 해서는 안 된다.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노력을 한 연후에만 비로소 산ㆍ학협력의 열매가 익기를 기다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