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40년 전인 1965년 8월9일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는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에게 독립을 선언했다. 같은 날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툰쿠 압둘 라만도 싱가포르와의 합병이 실패했고 이 섬나라가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싱가포르와 리콴유는 웃음을 지을 만한 상황이 됐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와 최고의 효율성을 지닌 공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들이 좋아하는 번영한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도 고무나 주석,원목 생산국가에서 40년간 발전을 거듭해 다변화된 경제 체제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민족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육성한 대표기업을 살펴보면 두 나라가 걸어온 길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 기업은 싱가포르항공이고 말레이시아는 자동차회사인 프로톤이다. 싱가포르항공은 국적 항공사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국제 항공협정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극도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해왔다. 내수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싱가포르항공은 다른 나라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전 세계에서 간부와 승무원들을 영입했다. 고유가 등 어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싱가포르항공은 지난 분기에 1억5300만달러의 흑자를 내는 등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항공사가 됐다. 말레이시아는 프로톤이란 자동차 회사를 육성했는데 싱가포르와 달리 관세를 높이고 수입차의 진입을 막아 내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9년 프로톤은 말레이시아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했지만 현재 점유율은 40%에 불과하다.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말레이시아는 최근 프로톤의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가 어려움 없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내수 침체와 아시아 지역의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싱가포르는 실용적 관점을 유지한데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췄기 때문에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는 위기를 겪었을 때 민족주의에 기반한 돈키호테식 결정을 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의 '동진정책'은 일본 투자가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방세계에 대한 적개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하티르의 뒤를 이은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모두 중국과 인도의 부상으로 지속적 성장을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교조주의를 버리고 얼마나 유연성을 가지느냐가 이런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또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인력을 얼마나 잘 확보하고 어떻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느냐도 중요한 과제다. 정리=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 -------------------------------------------------------- ◆이 글은 8월8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인도출신 작가 사릴 트리파티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다른 행보'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