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북송금 사태를 보는 것 같다" 7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이 내던진 말이다. 국가정보원이 5일 김대중(DJ) 정부 4년 동안에도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고 발표한 뒤 DJ측은 즉각 최경환 비서관이 보도 자료를 통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죄했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면서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당혹감이 분노심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X파일, 도청 테이프 정국'의 초점이 `YS(김영삼 전 대통령) 문민정부'에서 `DJ 국민의 정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국정원 발표가 `인권 대통령'을 자부해 온 DJ를 도청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질시키고 있는데다 검찰이 국민의 정부 국정원 불법 도.감청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 비서관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함께 국정개혁을 수행한 분들이 소환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겠느냐"며 "또 다시 국민의 정부, 국정개혁의 일꾼들에게 치욕과 수모를 주려 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다른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정부 청와대의 한 핵심인사는 "국가 권력 차원에서 정적 탄압을 위해 조직적으로 도청을 하고, 이를 활용한 YS 정권과 미림팀은 어디로 갔느냐"며 "심지어 문민정부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국민의 정부는 시효가 남았기 때문에 처벌도 가능하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순식간에 국민의 정부만 죄인이 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과연 납득하겠는가. 시쳇 말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라고 격앙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국정원에서 불법 도.감청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믿기 어렵다"면서도 "국정원내 일부의 잘못된 행동일 뿐"이라는 반응이 주조를 이룬다. 이 인사는 "옛 안기부 개혁과정에서 개혁과 반개혁, 개혁과 관행 사이에서 빚어진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정권 차원의 불법도청이 있었다면 당시 국정원 내부의 `반(反) DJ 세력'이 가만 있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DJ측 일각에서는 이번 국정원 발표가 현 정권이 DJ와 또 한번의 단절을 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야당 일부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 전직 청와대 인사는 "노 대통령이 대선승리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고, 그 결과는 당시 민주당이 내분으로 빠져들면서 결국 분당에 이른 것이었다"며 "만약 이번 사안이 정치지형 재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사태는 누구도 예상키 어려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