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측을 비롯한 국민의 정부 고위인사들은 5일 자신들의 집권시절에도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이 계속됐다는 발표를 접하고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날 국정원의 발표에 대해 대부분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가운데 일부는 불법도청 사실을 공개한 현 정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우선 동교동의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정원 발표에 대한 입장을 정리 중"이라며 갑작스런 발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 비서관은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최대피해자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국정원의 발표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였다. 국민의 정부시절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고위인사들은 대부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국정원 발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99년 말부터 1년여간 국정원장으로 재직했던 임동원(林東源) 세종재단 이사장은 자택에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임 이사장에 이어 국정원을 지휘했던 신 건(辛 建) 전 원장은 휴가중으로 연락이 되지 않았고,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이종찬(李鍾贊) 전 의원은 가족과 미국에 체류 중인 상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국정원 기조실장을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았던 열린우리당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몽골 출장 중으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국정원이 불법도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의원은 도청사실을 보고받을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잘라말했다. 이 의원에 이어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문희상(文喜相) 의장은 제주도에서 휴가 중으로 언론과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당 관계자들과 연락하면서 대책을 숙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을 떠난 김 전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은 상당히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측근은 "미림팀을 수사해야지 왜 국민의 정부를 수사하려 하느냐"고 흥분했다. 이훈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김 전 대통령의 도청금지 지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불법 도청을 감행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 전 실장은 "국민의 정부가 정권차원에서 도청했다는 얘기처럼 비쳐지는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당시 도청을 했다는 사람들이 청와대나 정권실세에게 보고를 했다고 확인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는 현 여권에 몸을 담고 있는 인사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한 핵심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생리상 (도청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금도 그런 식의 정보 수집은 없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국정원의 핵심은 이종찬-문희상-이강래-나종일 라인"이라며 "이강래와 문희상은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