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자료인 X파일을 언론사에 넘긴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재미교포 박모씨가 이달 17일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확인돼 그의 입국 목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씨는 입국할 당시 X파일의 핵심 내용이 포털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돼 관계당국이 이미 내사에 들어갔던 점을 감안하면 사법처리될 위험을 무릅쓰고 입국을 강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안기부 미림팀장 출신의 공운영씨로부터 도청자료를 건네받아 보관하다 언론에 제공한 박씨를 상대로 도청 테이프의 입수 및 유출 경위를 조사하면서 그의 입국 목적을 규명하는 데도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박씨가 당국에 체포될 위험성을 충분히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로 들어온 것은 X파일 등과 관련해 또 다른 범죄행각을 시도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기부 미림팀의 도청문제와 X파일이 언론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것은 박씨가 입국하기 나흘 전인 이달 21일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 사건에 휘말릴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국내로 들어왔다는 추론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뒤에도 곧바로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 머물렀고, 국정원에 의해 출국정지된 다음날인 26일에야 미국으로 떠나려다 저지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 가설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미국으로 떠날 때 언론사 기자 2명과 동행하려 했던 점도 입국 목적 및 국내 체류 행적에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입국 목적과 관련해 우선 미국 시민권자인 박씨가 MBC기자에게 넘긴 도청자료의 공개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이를 막으려고 `안전지대'인 미국을 떠나 국내로 들어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도청자료가 공개됐을 때 비난이 화살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입국했다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미림팀장 출신의 공씨의 자술서를 보면 박씨는 공씨와 도청자료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술서에는 박씨가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면직당한 전 국정원 직원 A씨의 소개로 알게된 공씨에게 삼성과 사업에 필요하다며 삼성관련 도청자료를 요청해 해당 자료를 넘겨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공씨는 그 후 박씨가 삼성을 협박한다는 말을 듣고 박씨에게 주의를 주며 무마시켰으나 5년이 지난 최근 다시 A씨로부터 `박씨 아들이 찾아오고 뒤이어 MBC기자가 만나자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씨가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알게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박씨는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애초 삼성관련 테이프를 입수한 목적이 국정원에서 강제 해직된 직원들의 복직을 돕기 위한 것이며 삼성을 상대로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공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따라서 박씨는 공씨와 삼성문제를 두고 다툼이 있었던 터에 최근 도청자료를 언론에 유출한 일로 공씨와 다시 한번 갈등을 빚자 X파일 공개에 따른 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상황을 막으려고 입국했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언론도청자료를 확보한 MBC 외에 다른 언론들이 X파일을 공개하려는 움직임을 간파한 삼성측과 모종의 뒷거래를 하기 위해 입국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삼성측이 박씨의 출국 움직임을 간파하고 국정원에 제보해 출국정지토록 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는 이 가능성을 높여주고 부분이다. 박씨가 공씨로부터 새로운 도청자료를 얻으려 했거나 아니면 이미 확보한 테이프나 문건을 언론에 추가로 제공하려고 입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국가정보기관이 불법도청한 자료를 언론에 넘긴 장본인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검거될 경우 중형선고가 불가피한 위험성을 감수할 만한 이익을 노렸을 공산이 큰 만큼 이 부분은 향후 검찰 조사에서 반드시 규명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