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요? 절대 살기 편한 나라가 아닙니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만난 택시기사 탄미아훈씨는 생활 여건이 어떠냐는 질문에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했다. '인공의 낙원'으로 불리는 선진국이지만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면 무조건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부유하고 깨끗한 도시로 알려진 싱가포르는 이미 국가 경쟁력,국제화 수준 등에서 세계 1,2위를 달리는 명실상부한 일류국가다.


하지만 사회구조는 다른 선진국과 많은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게 임금수준이다.




한순택 LG상사 싱가포르 법인장은 "한달에 100만원만 주면 전문대를 졸업하고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석 우리은행 싱가포르 지점장도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싱가포르 정부 장학금을 받고 난양공대를 졸업한 인재의 초임이 월 120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이렇게 싼 임금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몬드 림 재무부 차관은 양질의 값싼 노동력 공급을 통한 아시아 허브건설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는 "지난 1960년대 많은 나라들이 무역장벽을 높이며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려고 노력했을 때 싱가포르는 전세계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아시아의 오아시스'건설을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가 독립했던 1965년 다른 경쟁국들은 자국산업을 키우기 위해 열을 올렸지만 싱가포르는 이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이를 위해 '다국적 기업 유치를 통한 발전'이란 전략을 수립한 뒤 외국의 거대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 개조 작업에 착수했다.


그 대표적 정책은 △값싼 양질의 노동력 공급 △노동시장 유연화 △영어 공용화 △투명하고 일관된 정책 △부정부패 척결 △물류산업 육성 △치안 확립 △경쟁적 사회 풍토 조성 등이다.


싱가포르는 우선 값싼 임금 정착의 해법을 근로자의 의식주 해결에서 찾았다.


중앙연금펀드(CPF)를 통해 자신이 저축한 돈의 20%를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20년 동안 매달 분납하면 누구라도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담배와 주류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식료품 값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시켰다.


실제 시내 중심가에서도 대다수 직장인들이 우리 돈으로 2000∼3000원에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연금을 활용하고 공공 의료기관을 확충하는 방법을 통해 의료 문제도 해결했다.


100만원대의 월급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졸 초임은 낮지만 고위직 인사들의 연봉이 매우 높은 것 또한 싱가포르의 특징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장관급 연봉을 다국적 기업 CEO와 연동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했고 아시아 외환위기와 닷컴 거품 붕괴 등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에도 이 약속을 지켰다.


현재 장관급은 7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문제에도 단호하게 접근했다.


대화와 설득을 하면서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노조 해산같은 극약 처방을 쓰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두 달 전에 통보만 하면 얼마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심지어 비즈니스 환경을 위해 표준시간까지 조정했다.


싱가포르 표준시는 현재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늦고 홍콩과는 같다.


홍콩보다 훨씬 서쪽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약 3시간 정도 늦는 게 정상이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기업들의 편의와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홍콩과 같은 시간대를 설정했다.


세계화란 용어가 낯설었던 시절 싱가포르 관료들은 전세계 기업과 금융회사를 돌며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설득했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는 현재 6000개의 다국적 기업과 1만여개의 외국 중소기업들이 활동하는 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싱가포르=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