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국내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기업형 산업스파이가 날뛰고 있다.과거 개인차원의 절도수준에 머물던 산업스파이가 최근들어서는 아예 별도 회사까지 설립해 기술을 빼내는 등 기업형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기술유출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핵심인력을 스카웃하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해당 기업을 인수합병(M&A)해 핵심기술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특히 중국이 핵심기술과 노하우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등장하고 있어 머지않아 국내 시장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우려된다.그러나 기업M&A 인재스카웃 등 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어 단속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통째로 삼킨다=M&A라는 합법적인 방식을 내세워 핵심기술을 통째로 삼키고 있다. 하이닉스의 LCD사업을 인수한 중국 징둥팡(BOE)이 대표적 사례.징둥팡은 하이닉스LCD사업 인수를 발판으로 지난 5월 베이징에서 5세대 TFT-LCD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상하이자동차도 쌍용자동차를 인수함에 따라 독자모델 개발을 위한 기술과 인력을 '원샷'에 확보했다. 중국 거대 유통업체인 샨다는 국내 토종 온라인게임 개발업체인 액토즈소프트와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을 인수해 모든 핵심기술을 손에 넣은 케이스.'미르의전설' '신영웅문' '포트리스2' 등 한국 게임을 중국에 서비스하면서 중국 최대 게임유통회사로 성장한 샨다는 국산게임을 불법 복제,유통하다 지식재산권 침해혐의로 제소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위메이드의 2대 주주인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며 소송을 무마시킨 것은 물론 사실상 국내 우수 인력과 기술을 합법적으로 빼앗은 것. ◆인재 스카우트=고위 경영진,엔지니어 등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해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간접적으로 빼내가는 일도 성행하고 있다. 제지 자동차 전자는 물론 섬유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중국 최대 제지회사인 산둥 첸밍그룹이 신무림제지 부회장 출신인 이원수씨를 그룹의 총경리(CEO)로 스카우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 최대 민영자동차인 지리자동차는 지난해 8월 엔지니어 출신으로 대우자동차 부사장을 지낸 심봉섭씨를 영입했다. 중국 가전업체 TCL이 프랑스 톰슨의 TV사업부문을 합작해 세운 TTE의 COO(최고운영경영자) 역시 한국인이다. LG필립스 임원 출신인 조기송씨는 TCL의 해외사업에 깊숙이 개입해왔다가 TTE의 중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언론은 최근 세계 최대 전자레인지업체인 거란쓰가 2003년부터 작년 말까지 영입한 한국인 전문가가 14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중국 섬유업체 어우야투자는 올해 초 100만위안의 연봉을 내세워 한국인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세계 3위 PC업체이면서 휴대폰까지 생산하는 중국 롄상은 상하이에 한국 대기업 출신 휴대폰 디자인 인력을 대거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아웃소싱=중국 기업을 위해 프리랜서로 뛰는 한국인 개발인력도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독자적인 게임개발에 앞다퉈 나서면서 게임개발 수요가 커짐에 따라 한국의 일부 연구인력들은 선전 등에 회사를 차려 기술을 아웃소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금난에 처한 한국의 중소 온라인 게임업체는 아예 소스까지 매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임상택 기자 kjoh@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