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러(error)야,에러. 그건 아라베스크가 아니라 에러베스크야."


지난 22일 밤 9시30분경. 서울 압구정동 발레아카데미. 누군가가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로 선 채 다른 쪽 다리를 뒤로 들어올리는 발레 자세)동작을 어설프게 연기하자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핀잔이 쏟아진다. 20평 남짓한 발레학원에서 음악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는 이들은 대입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10대 소녀들도,조기교육을 받는 꼬마 아가씨들도 아니다.



대부분 서른 살 안팎의 직장 여성들.발레를 전공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취미삼아 즐길 뿐이다. 분홍색 레오타드(발레 무용복)에 마룻바닥을 스칠 듯 말 듯 사뿐사뿐 몸동작을 하고 있는 남지윤씨(여·30). 소프트웨어개발회사에 다니는 그는 2년째 발레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올해로 직장생활 6년째인 그는 취미이면서 운동도 되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찾은 게 발레.


"발레는 정적이지만 몸이 개운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승진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어학이나 직무교육에 매달렸던 직장인들이 남씨처럼 취미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평생학습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25세 이상 64세 미만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6.6%가 '취미나 여가 학습을 받고 싶다'고 대답,'경력이나 직업관련 교육을 받고 싶다(33.4%)'는 답변을 압도했다. 연구를 주도한 최돈민 박사는 "쫓기듯 살기보다는 여유를 추구하겠다는 다운시프트(down-shift)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즐거움을 배우는 학원' 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씨의 경우 2년 전 발레아카데미의 인터넷카페를 발견하고 한참 망설이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한 번도 발레를 해본 적이 없고 스트레칭조차 안되는데 가능할까요?" "그냥 트레이닝복 입고 한번 오세요"라는 학원측 답변에 용기를 얻은 남씨는 정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학원을 찾았다.


과연 한눈에 보기에도 왕초보에 몸매도 별로 예쁘지 않은 사람들이 기우뚱거리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미숙한 몸동작을 보고 즐기면서 지금까지 왔다.


동시통역사 웹마스터 등 새 친구들은 발레를 통해 얻은 보너스.남씨는 "발레를 즐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 통하는 사람들"이라며 "가끔씩 이들과 함께 발레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은 또다른 취미이자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발레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