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여자프로복싱 사상 첫 남북대결을 벌였던 한국의 한민주(25.리빙체)는 경기에 지고서도 시종 담담한 표정이었다. 지난 28일 세계여자권투협의회(WBCF) 라이트플라이급 랭킹전에서 북한의 한연순에게 판정패한 한민주는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기쁘다면서 더 큰 도약을 위한 계기로 삼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29일 귀국을 앞둔 한민주는 "솔직히 사상 첫 여자복싱 남북대결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마음에 부담이 됐다.그동안 북한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불안했었다"고 운을 뗐다. 당초 한연순의 상대였던 손초롱이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평양길에 올랐던 한민주는 불과 경기 1주일을 남기고 남북대결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기에 28일 경기에서 승리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한민주는 평양에 들어와서도 새벽에 러닝을 하면서 컨디션 조절에 힘쓰며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상대인 한연순이 왼손잡이인데다 스피드가 빠른 선수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왼손잡이인 한민주는 "상대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출국 사흘전에 알았다. 상대의 이름 밖에 모른 상태에서 북한으로 넘어왔다. 물론 상대 또한 나를 잘 몰랐겠지만 아무런 정보없이 싸우는게 쉽지는 않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한민주는 이번 남북대결에서 성공할 경우 9월에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기에 아쉬움을 더욱 컸다. 이제 다시 평범한 주유소 점원으로 돌아가야한다는 한민주는 북한 복서와 싸웠다는 그 자체로 만족키로 했다. 한민주는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선수와 인사를 하면서 `잘 하더구나'고 말하니 한연순이 `언니도 정말 잘 싸웠어요'라고 말해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 경기장을 나오는 길에 북한 세계챔피언들과 기념 사진도 찍었다"고 말했다. 한민주의 꿈은 여전히 세계챔프다. 평양 대회를 평생 간직하겠다는 한민주는 "이번 대회가 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놓쳐서 아쉽다. 하지만 인생은 실패와 성공이 있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정상에 오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평양=연합뉴스) 심재훈기자 president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