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 서울대 교수 ·정치학 > 요즈음 주변을 돌아보면 뒤죽박죽인 일들이 많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우선 그렇다. 예전에는 겨울이 춥고 봄이 포근하고 여름이 더워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했는데,어느덧 봄과 가을은 없어지고 여름과 겨울만이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포근한 겨울'도 자연스럽고 '여름 같은 봄'도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것이 변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집을 사고 팔 때는 복덕방을 통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집을 사고 파는 일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또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자.우리 모두 어렸을 때 밤하늘을 바라보면 달이 가는지,구름이 가는지를 놓고 헷갈린 경우가 많았다. 달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구름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비로소 커서야 달은 가만히 있는데 구름이 간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세월이 간다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세월의 빠름을 탄식하는데 실제로 늙어 가는 것은 '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애꿎게도 빨리 가는 세월 때문에 가만히 있는 '내'가 늙어가는 것처럼 죄 없는 세월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방과 나의 처지를 잘못 뒤바꾸어보는 일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오래 전부터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고 대통령조차 "강남불패를 깨야겠다는 대통령의 생각도 불패"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수많은 규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강남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더 오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자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시장의 실패'로 돌려 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명명백백한 정부의 '정책실패'를 왜 '시장실패'라고 강변하는가. 그것은 젓가락을 물에 넣으면 굽어보이는 것처럼 착시현상 때문인가. 아니면 집값은 떨어져야 하는데 올라가자 문제의 '인지부조화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인가. 하기야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헬멧을 쓰지 않는 이유도 자신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인지부조화 해소 노력의 일환일 터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현령비현령'처럼 보기에 따라 '정책실패'도 될 수 있고 '시장실패'도 될 수 있어 그런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정책실패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정부의 오만한 태도나 핑계거리를 찾는 비겁한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사실 '정책실패'는 정부의 이기적 단견에서 비롯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남의 집값을 잡고 그걸 정부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목표의식에 매달려 물불 안 가리고 땜질식 규제책을 남발한 결과다. 이처럼 시장을 손에 쥐고 좌지우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시장실패'라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또 얼마 전에는 "정부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의 말도 있었다. 사실 영세업종까지도 정부가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판인데 어떻게 시장이 버젓한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제목처럼 양떼를 치는 양치기,즉 목자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시장행위자들을 양으로 생각하고 정부관료를 목자로 생각하는 태도다. 지금이 어느 땐데 그런 발상을 하고 있을까. 지금의 정책 실패는 바로 이러한 전근대적인 비전에서 나온 것이다. 스스로를 목자로 자처하고 시장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필패'다. 정부는 좀더 겸손할 수 없을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행위자들의 합리성을 존중하고 시장의 힘을 제대로 평가하는 태도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