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모 < 前 금융통화위원 >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들 곁을 떠난 지도 어느덧 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타계 일주기를 맞아 지인과 제자들이 뜻을 모아 고 전철환 총재의 유고집 '한국경제에 고(告)함'을 세상에 내놓았다.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나라의 경제와 정치 현안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고인이 고심을 거듭하면서 펼친 글들을 엮은 평론집이다. 이 유고집에 실린 글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고인의 뜨거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고 전철환 총재는 일생을 바쳐 학문연찬의 고독한 길을 걸어 온 경제학자로,그리고 제자 육성을 저작 활동과 함께 인생의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던 교육자로,그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거목과 같은 존재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고인의 모습이 유달리 크게 보이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 정신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원칙과 정도를 잃지 않았고,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의식을 특히 강조했던 투철한 사명감과 정열에서 바르게 행동하는 현대 지성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한국은행 총재직을 맡았던 고인은 1998년 금융기관 구조조정 때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등 재정지출 충당을 위해 거액의 국채를 발행하면서 한국은행에 국채 직접 인수를 요청하자 정부 당국을 끝까지 설득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발행을 통해 이를 조달토록 했다. 이로써 한국은행법 정신을 지키면서 우리나라 채권시장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개방화에 발맞춰 통화신용 정책의 기본틀을 총통화 증가율 목표치 범위 안에서 총통화 공급량 조절에 의존하는 금융시장 직접조절 방식에서 기준금리(콜금리) 조정을 통한 시장자금 수급조절 기능에 의존하는 간접조절 방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채시장의 중심금리 형성이 중요한 선행조건이었다. 채권시장에서 정부 국고채 발행은 바로 이러한 중심금리 형성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자 했던 고인의 정책 의지는 우리나라 통화신용 정책의 구조를 가격(금리) 기능 중심의 선진국형으로 이끌어 가는 데 하나의 큰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철환 전 총재의 일주기를 맞아 고인의 영전에 삼가 슬픔의 글과 함께 후배들이 정리해 엮은 유고집을 바치니,조그마한 정성일 망정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시기만을 바랄 뿐이다.